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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조제’는 성숙한 30대…더 깊고, 더 아프다

등록 2020-12-09 16:59수정 2020-12-10 02:36

[일본 영화 리메이크작 ‘조제’ 10일 개봉]
영화 <조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조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왜 조제인가?”

김종관 감독이 2004년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거기엔 어김없이 걱정이 서려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까지도 열렬한 지지를 받는 원작을 넘어서는 리메이크작은 불가능해 보였다.

원작 관계자로부터 처음 리메이크 제안을 받았을 때 김 감독은 부담감에 거절했다. 하지만 원작의 매력인 “사람에 대한 깊은 시선과 인간애”는 김 감독도 늘 다루고 싶어 한 주제였다. 이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자신만의 색깔로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위험과 부담을 무릅쓰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10일 개봉하는 <조제>다.

영화 &lt;조제&gt;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조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하반신 장애를 지닌 조제(이케와키 지즈루)와 대학 졸업반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의 사랑과 이별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은 원작과 큰 틀의 이야기는 같다. 다만 “원작이 만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내게도 관객에게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김 감독은 자신만의 변주를 했다. 쓰네오와 20대 초중반 동년배로 나온 원작의 조제와 달리 한국판 조제(한지민)는 대학 졸업반 영석(남주혁)보다 연상인 30대 중반으로 나온다. “좀 더 깊고 성숙한 인물”로 그리고 싶어서다.

한국판 조제는 육체적 장애뿐 아니라 내면의 상처도 깊다.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아오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했다. 원작의 조제보다 훨씬 더 어둡고 쓸쓸한 인물이다. 바깥세상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움에 쉬이 나서지 못한다. 이런 캐릭터를 쌓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조제의 아픈 과거를 심었다. 김 감독은 “상처를 지닌 조제가 영석을 만나고 바깥세상을 보면서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영화 &lt;조제&gt;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조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한국 사정에 맞는 현실성도 가미했다. 30대 중반이 원작에서처럼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탄다는 설정은 어색하기에 전동휠체어로 바꿨다. 전동휠체어 사고가 나면서 조제와 영석은 처음 만난다. 쓰네오가 유모차에 스케이트보드를 달고 함께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은 영석이 조제의 휠체어를 밀며 낙엽길을 산책하는 낭만적인 장면으로 바뀌었다.

조제의 집은 낡았으면서도 아늑한,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여기서 조제는 수집가다. 할머니가 주워온 헌책이며 빈 위스키병을 잔뜩 모아두고는 “여기는 버려진 것들의 쉼터 같은 곳이야. 내가 이뻐해 주지”라고 말한다. 조제는 책으로 세상을 접하고, 빈 병의 향을 맡으며 위스키를 즐긴다. “갇혀 지내도 확고한 취향이 있으면 덜 불행할 것 같았다”는 김 감독 나름의 조제에 대한 배려다.

영화 &lt;조제&gt;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조제>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석은 원작의 쓰네오와 비슷하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생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적당히 연애도 하고, 취업 걱정에 앞날을 불안해한다. 평범하면서 사려 깊은 영석은 조제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남주혁은 “혹시나 쓰네오와 비슷해질까 봐 3~4년 전에 봤던 원작을 일부러 다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지민도 “원작을 10년 전에 한번 보고는 촬영 전에 다시 보지 않았다”고 했다.

느리고 차분한 영화의 여백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집 안 곳곳을 담아낸 감각적인 영상과 생활 소음이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장편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에 배어났던 김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눈 내리는 밤 집 앞 골목길에서 조제와 영석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첫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원작 속 지극히 현실적인 대낮 현관문 첫 키스 장면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영화 &lt;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gt;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원작에선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고 끝내 이별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담백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판은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에 집중한 반면, 이별의 과정은 생략했다. 김 감독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다. 누구 한 사람에게 이별의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원작과 다른 길을 간다면 이별의 이유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에선 쓰네오의 시점으로 사랑하고 이별하지만, 한국판에선 영석과 조제의 시점을 오간다. “특히 마지막은 원작과 달리 조제의 시점으로 풀어가고 싶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원작의 호랑이와 물고기가 지니는 상징성은 한국판에도 이어진다. 다만 구체적 형태는 다르다. 둘이 여행을 떠나는 장소도 다르다. 동물원의 호랑이는 한국판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수족관이 문을 닫아 모텔의 조명으로 대리만족해야 했던 물고기는 한국판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원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바닷가 산책은 어떤 장소로 바뀌는지, 무엇보다 원작 마지막 장면의 짙은 여운을 어떤 마무리로 되살리는지…. 원작의 팬들은 궁금증이 클 터다. 한번은 한국판 <조제>의 깊고 서정적인 향기를 즐기고, 또 한번은 일본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교하며 변주의 새로움을 맛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 될 듯싶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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