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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천상의 소녀’ 아프간 뒷골목 소녀 흐느낌

등록 2006-02-01 19:05수정 2006-02-01 21:53


몇 차례 영화가 자아냈던 웃음이 참 얄궂다. 괜스레 희망까지 품고서 결말을 지켜보다 돌연 말을 잃게 된다. 그리고선 바로 여기가 거기가 아닌 현실로 숨을 쓸어내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오사마>를 원제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영화 <천상의 소녀>는 그 곳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고 유린하던 탈레반 혁명 정부 시대의 한 풍경 정도라 간추리면 알맞다.

영화는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탈레반을 향한 날선 미움이나 민중들에 대한 애틋한 동정도 없이 그저 그 풍경들을 비출 뿐. 수도 카불의 뒷골목이 영상을 스치고, 일자리를 달라는 여성들, 코란을 외다가도 망아지처럼 뛰노는 (복 받은) ‘사내’아이들, 그리고 여러 처를 거느리는 노인의 멱 감는 풍광까지 질박한 시선 따라 그저 오고 가는 것이다.

그 곳 출신 세디그 바르막 감독은 애당초 ‘밝은 결론’을 예정했다가 바꿨다고 했다. 현실을 배반한 채 도식적으로 희망을 지어내진 않겠다는 뜻이었다.

탈레반 군에 의해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소녀의 가족은 끼니조차 잇기 어렵다. 어머니는 병원일마저 잃고서 집안에 남자가 없다며 통곡한다. 속수무책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소녀는 남자를 동반하지 않고선 밖에 나갈 수도, 일을 할 수도 없다. 길가에 나앉은 개만큼도 자유가 없는 이들은, 소녀를 사내아이로 꾸미기로 한다. 소녀는 두렵다. 회교 근본주의를 떠받드는 탈레반에 의해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를 연기한 열세살 마리나 골바하리의 얼굴은 그 공포와 불안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카불의 밤거리에서 가족을 위해 구걸하다 감독에게 발견된 뒤 연기 훈련도 없이 바로 카메라 앞에 선 골바하리의 것인지, 영화 속 소녀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친구 에스판디(아리프 헤라티)는 그를 ‘오사마’라 부르며 지켜주려 하지만 소녀는 결국 적발되어 죗값으로 욕정 가득한 노인의 어린 후처가 된다. 죽음을 모면해서 차라리 다행인 건지, 매일 죽음을 되풀이하는 생지옥으로 간 것인지 영화는 내다보지 않는다. 울고 있는 소녀를 뒤로 하고 느긋하게 목욕하는 노인을 멀찌감치 비추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모든 배우가 현지에서 캐스팅된 가난한 이들이다. 이전에 비디오로 본 <타이타닉>이 유일한 영화였던 골바하리의 출연료 14달러는 가족을 위해 카불 빈민지의 진흙집을 사는 데 쓰였다. 다른 여성들도 여전히 가난과 차별적 핍박에 상처받고 있다.

‘천상의 소녀’란 번역 제목은 그래서 더 얄궂다. 소년이 되기 위해 자른 머리를 화분에 심는 소녀. 하지만 희망의 ‘싹’이 행복을 의미하지 못한다. 화분 속 그 머리칼이 제 키만큼 자라기 전 그곳에 행복은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탈레반 정권이 가장 악랄하게 전해졌던 건 2001년 바미얀의 세계 최대 마애석불이 파괴됐을 때다. 그건 사람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회교 근본주의에 대한 분노에 가까웠다. 그 곳에 사람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안 건 한참 뒤다. 이미 오래 동안 아픔으로 곪아있던 뒤다. 이제라도 제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인지 모른다. 2003년 작품. 그해 칸 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은 수작이다. 탈레반이 붕괴되고 아프가니스탄 재건된 이후 첫 자국 영화다. 2일 씨네큐브 단관 개봉.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영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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