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배달노동자 한노아 사진작가
“코로나 19 때문에 바뀌고 있는 세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지난 7월 27일부터 지난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린 사진전은 <오니고 On y Go>라는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오니고는 ‘가자’라는 뜻의 프랑스어(On y Va)에서 ‘바’(Va) 대신 영어 ‘고’(Go)를 붙여 쓰면서 생긴 은어다. 배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시 작업노트에 나온 설명이다.
전시작들은 거리에서 달리거나 걷고 있는 배달노동자들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 또한 배달노동자다. 한노아(32) 작가를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사진으로 세상을 기록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배달노동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는 “생계가 막막해서다. 본업은 상업사진이다. 코로나 19로 행사도 취소되고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 나도 배달을 시켜먹는 소비자였을 뿐, 배달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생활이 어려워진 지인들이 너도나도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뛰어들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배달하고 2, 3일이 지나면서 “그 전엔 안 보였다가 비로소 보이게 된 것들이 있어” 카메라를 몸에 두르고 스쿠터에 올랐다. 신호등, 경비원의 시선, 지금껏 들어가 보지 못했던 집들, 사람은 없고 모니터만 불을 밝힌 가게들이 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담았다. “거리에 나가보니 (콜을 잡으려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나 같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기록하는 이유에 대해 “어느 시대에만 보이는 것이 있죠. 나중엔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지금이 바로 시대가 바뀌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인공지능(AI) 플랫폼이 배달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나왔으니 진통도 따를 수밖에 없다. 10년 전 20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촉발된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을 기억한다”라고 했다.
사진을 몇 달 찍으면서 한 작가는 누군가 이 사진들을 봐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4달 정도 안 쓰고 배달하면서 모은 돈을 이번 전시비용에 쏟아부었다. 사진을 받아본 류가헌 박미경 관장은 “어디선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전시공간도 조금 더 넓게 제공하는 등 할 수 있는 것을 지원했다”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마음이 급했다. 빨리 사람들에게 플랫폼노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거리로 내몰려 오토바이를 타게 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에이아이가 재촉하니 신호를 어기고 난폭운전을 하는 분들도 있다. 직선거리를 제시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에이아이는 모른다고 한다. 이를 플랫폼 기업 고객센터에 하소연해도 에이아이가 처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나온다”라고 했다.
생계 해결 위해 배달 노동하며
“코로나가 바꾼 세상 기록하려”
플랫폼 노동 현장 카메라 담아
최근 류가헌에서 ‘오니고’ 전시
6년 전 오토바이에 텐트 싣고
극동에서 몽골 거쳐 런던까지 질주
그는 지금까지 길지 않은 인생에서 50번의 거주지 이동을 했다. 시간과 공간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이는 경향이 강해서 뭔가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사진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실수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고민하다 도망가다시피 제주도로 가서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등 동시에 3가지 일을 했고 겨울엔 강원도 평창으로 가서 스키장 장비 관련 일을 하면서 2년 가까이 열심히 돈을 모았다. 까마득하던 빚을 다 갚고 여행경비도 마련했다. 그리고는 2015년에 “그곳에선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거 하나가 궁금하여” 오토바이에 텐트를 싣고 동해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한노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그로부터 10개월간 이어졌다.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어느 호텔에선 방이 있음에도 인종차별로 내주지 않아 거리에서 서성거리는데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라고 생각해 무작정 따라갔는데 그 사내가 말했다. “러시아 바이커는 하나다. 우리는 형제다. 러시아를 나갈 때까지 바이커가 너를 안내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부끄러워졌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바이칼호수를 거쳐 몽골, 에스토니아, 폴란드를 지나 런던에 도착했다. 잠깐 귀국해 비자를 받아 다시 프랑스로 향했다. 사진 현상하고 스캔하는 일을 했으며 스트라스부르 예술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알게 되어 작품사진, 퍼포먼스 촬영도 하고 파리에선 신혼여행객 사진도 찍으면서 연명했다. 사진으로 돈을 벌게 되니 사진을 더 진지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고 많이 배웠다고 했다.
계획에 대해 한 작가는 “당분간은 생계를 위해 이 일을 1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오니고’ 작업도 보완하고 보충할 것이다. 전시장에 관객들이 꽤 다녀갔다. 배달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간부들이 관심을 보였고 녹색병원 관계자가 찾아와 ‘하반기 대시민캠페인과 연계해 다른 곳에서 전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스위스의 온라인 잡지(Schauplatz)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갔다. 한국의 배달문화가 흥미롭게 보인 모양이다”라고 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거리에서 스쿠터를 타고 배달하던 중 만난 한노아 작가. 곽윤섭 선임기자
한노아 사진 작품 ‘2021 종로’.
한노아 사진 작품 ‘2021 광장시장’.
한노아 사진작품 ‘2021 보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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