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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2005년 연극가 최대 화재작 <그린벤치> 앙코르 공연

등록 2006-02-08 17:15수정 2006-02-09 17:46

그 가족, 치명적 치정사

“때는 8월. 귀찮을 정도의 매미 소리. 오후의, 유화처럼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태양이 빛나는 테니스 코트에서, 요오코와 그의 남동생 아키라가 테니스를 치고 있다. 코트 옆의 그린벤치에는 요오코와 아키라의 어머니인 다이코가 왔다갔다하는 공을 눈으로 좇으면서 앉아 있다.”

얽히고설킨 ‘근친상간’ 씁쓸한 되새김질
해체된 가족이 내지르는 고통의 비명 무대 가득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딸을 범하고 가정을 버렸으며, 딸은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남동생은 그런 누나를 사랑하고, 엄마는 딸을 질투하며, 다른 남자들을 전전한다.

얼키고 설킨 근친상간이라는 극단적 설정의 연극 <그린벤치>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비롯한 주요 연극상을 휩쓴 작품이었지만, 관객을 만난 것은 겨우 닷새에 불과했다. 이제 본격적인 관객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배우나 스태프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런데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두터워지고 구체화됐다고 할까요? 굉장히 좋아졌어요. 아마 한 번 해보고 나서 자신감들을 얻은 것 같아요.”

연출가 이성열(44·극단 백수광부 대표)씨는 배우들의 연기를 흡족해했다. 그러나 주문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를 테면 “눈물은 나지만 목소리는 전혀 젖어 있지 않”아야 하고, “눈물 같은 미소가” 흘러야 한다.

엄마 다이코 역의 예수정(51)씨는 지난해 공연에서 “자기를 옆에 눕혀두고 딸을 강간하는 남편으로부터 환멸을 느껴 남자를 증오하면서도 남자를 전전하는, 버림받은 여인의 역할을, 차분하면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광기로 우아함과 엽기성을 오가며 예술적으로 창조해냈다”(연극평론가 김윤철)는 평과 함께, 2005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았다.


원작은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38)의 것이다. 열여섯 살 때 집을 나와 도쿄의 한 극단에 연수생으로 들어간 뒤 희곡을 쓰기 시작한 유씨가, 소설로 옮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희곡이다. 병든 현대사회의 단면을, 색감과 소리가 넘치는 감각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이성열씨는 이 작품을 지난 1995년 연극으로 올린 적이 있다. “내내 아쉬운 감이 있었어요. 엽기적인 소재에 너무 치중해서 자극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었죠. 10년이 지나서 ‘이제 우리 사회도 근친상간이라는 치명적 주제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생겼고요. 해체된 가족의 날카롭고 섬뜩한 비명과도 같은 작품이지만, 이들이 본래 원하는 것은 가족을 회복하는 겁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졌을 때 받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로 열 돌을 맞은 극단 백수광부(백발의 미친 늙은이)의 10주년 기념 공연, 그 첫번째 작품이다. 23일~3월12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745-0308.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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