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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당당했던 아버지, 사진으로 귀환시키고 싶었죠”

등록 2021-10-03 18:35수정 2021-10-18 23:03

【짬】 사진작가 김일목씨

김일목 사진작가. 촬영 조진섭씨.
김일목 사진작가. 촬영 조진섭씨.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늙지도 쇠약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품은 살갗> 작업을 시작하게 했을 것이다.”

농부이자 사진가인 아들이 제주 4·3 피해자였으며 시인이자 활동가, 그리고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 김명식(77)씨를 10여 년 찍은 사진을 담고 있는 사진전 <나를 품은 살갗>이 5일부터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17일까지. 이 사진들로 2020년 온빛다큐멘터리 신진작가상을 받은 아들 김일목(27) 작가와 지난달 30일 전화로 만났다.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달랐다. 서울서 태어나 5살 때 가족이 모두 강원 화천으로 와서 줄곧 농촌에서 자라난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책을 보다 우리나라에 상용화하지 않은 콩과 작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16살 무렵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종 씨앗을 채집했다. 채집한 씨앗을 3년 정도 키웠는데 작물의 성장과 열매 맺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자니 사진이 꼭 필요했단다.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5일 ‘나를 품은 살갗’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왼쪽부터 부친 김명식 시인, 김형효 한겨레온 주주통신원, 아들 김일목 사진작가. 사진 김형효 주주통신원 제공
지난 10월5일 ‘나를 품은 살갗’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왼쪽부터 부친 김명식 시인, 김형효 한겨레온 주주통신원, 아들 김일목 사진작가. 사진 김형효 주주통신원 제공
그리고 모진 세월을 살아온 아버지가 다시 보였다고 했다. 어릴 땐 자세히 몰랐으나 이 무렵부터 아버지의 생애가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업 노트에서 그는 “아버지이기에 앞서 거칠고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온 한 개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제주도 하귀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 때 4·3항쟁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군경과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 자락으로 갔다. 이후 제주에서 기초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서 학업을 이었다. 1977년 박정희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10장의 역사연구’ 장시를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로 징역 3년을 살았다. 이후 일본으로 가서 공부하다 4·3항쟁을 다룬 소설을 쓴 김석범, 강창일 등을 만나게 되고 제주 4·3 진상규명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1990년 무렵 <제주민중항쟁>(전 3권)을 펴냈는데 국보법 위반과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1년 6개월 실형을 살았다. 그 뒤로 강원도로 터전을 옮겨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라고 썼다.

4·3 피해자·시인인 아버지 김명식씨
10년 동안 사진 찍어 류가헌에서 전시
부친, 박정희 비판 ‘장시’로 3년 징역
4·3규명 ‘제주민중항쟁’ 책 내 옥고도
“근현대사 되짚으려 아버지 찍었다”

토종씨앗 채집·기록하며 사진 흥미

김일목 사진 ‘2020년 9월 22일 제주도 4·3평화공원 행방불명자 묘비’. 작가 제공
김일목 사진 ‘2020년 9월 22일 제주도 4·3평화공원 행방불명자 묘비’. 작가 제공

그는 연민의 감정으로 머리가 희고 피부에 주름이 많은 아버지를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란 존재를 연민으로만 마주하기는 싫었다. 사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릴 적 나의 기억 속 당당했던 아버지를 오늘로 귀환시키는 일이었다. 오늘의 아버지가 아닌 과거의 아버지를 불러 세워 허리와 어깨를 펴게 했고 풍성한 머리칼과 굵은 팔뚝을 되살리려 애를 썼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버지를 찍은 사진으로 근현대사를 되짚어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김일목 사진 ‘2017년 3월 14일 강원도 화천’. 작가 제공
김일목 사진 ‘2017년 3월 14일 강원도 화천’. 작가 제공
김일목 사진 ‘2020년 9월 1일 강원도 화천 아버지 서재’. 작가 제공
김일목 사진 ‘2020년 9월 1일 강원도 화천 아버지 서재’. 작가 제공
그의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기도 하고 책으로 가득한 방에서 시를 쓰기도 한다. 아들의 카메라 앞에서 환한 햇살을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당신을 찍을 때마다 굉장히 좋아했단다. 지난해 온빛에서 상을 받을 때도 제일 기뻐하셨고 이번 사진전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제주도가 고향이니 제주도를 자주 가신다. 강정마을 반대운동을 하러 가신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전시작은 제주 강정마을 깃발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김 작가는 “사실 아버지는 내가 찍은 모든 사진을 사랑하신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버지가 지게에 나뭇짐을 잔뜩 지고 지팡이를 짚고 막 일어서려는 장면과 제주도 4·3평화공원 행불자 묘비 앞에 선 모습이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고 많은 생각이 들어있는 사진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할 무렵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사진을 한다면 비노바 바베를 평생 곁에서 찍었던 구탐 바자이처럼 하면 좋겠다.” 그리곤 책을 하나 보라고 주셨다. 간디의 제자이자 정신적 계승자인 비노바 바베의 글과 구탐 바자이의 사진으로 엮은 명상화보집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였다. 아들은 지금 4년째 강원도 화천지역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왜냐고요.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찍는 것 같습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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