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파 작가의 대작 ‘신 몽유 한라백두, 백두한라 통일대원도’의 낮 그림. 이 부분 길이만 32m다. 한반도 백두대간 줄기 전체를 낮 풍경과 밤 풍경으로 갈라 조망했는데, 두 풍경을 합치면 총길이 64m 작품이 된다. 노형석 기자
한국 미술계에서 국토 진경을 묘사한 기행 목판화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정비파(65) 작가가 길이 64m가 넘는 국내 최대규모의 목판화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정 작가는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한백두 날아오르다>(5일까지)에 총 길이 60m에 달하는 한국 목판화 전시 사상 가장 큰 작품 ‘신 몽유 한라백두, 백두한라 통일대원도’를 내걸었다. 이 대작은 남녘 한라산부터 북녘 백두산까지 한반도의 등뼈를 형성하는 ‘백두대간’의 전체 축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북한 산악지대의 연속 풍경을 담는다. 칼칼한 칼맛이 넘치게 목판에 가득 한반도 산하 풍경을 새겨 유성 잉크로 종이에 찍어냈다. 지리산, 설악산, 금강산 등 한반도 남북의 주요 산과 뻗어 나가는 산줄기의 기세, 산세와 나란히 출렁이는 동해, 국토 동쪽 끝 울릉도·독도, 개마고원의 풍경 등을 위에서 내려다본 구도로 묘사한 화면들이 이어진다.
작업실에서 소묘 작업 중인 정비파 작가. 작가 제공
화면 구성이 특이하다. 백두대간 줄기를 묘사한 신작의 연속 풍경은 가로 2m, 세로 2m80㎝의 화폭 16개를 합친 길이 32m짜리 화폭 안에서 상반되는 두 줄기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아래쪽은 한라산에서 백두산으로, 위쪽은 거꾸로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의 흐름이 서로 거울을 보듯 펼쳐진다. 그 사이 공간의 여백에 작가가 ‘한백두’라고 이름 붙인 흰꼬리수리가 활공하거나 백두산과 한라산 사이에서 남북한 합일을 상징하듯 다른 꼬리수리와 만나는 장면이 들어간다.
‘신 몽유 한라백두, 백두한라 통일대원도’ 낮 그림. 노형석 기자
‘신 몽유 한라백두, 백두한라 통일대원도’ 밤 풍경 그림. 한반도 백두대간 줄기 전체를 그렸다. 내걸린 그림 앞에 판각한 목판화 원판을 함께 세워 선보이고 있다. 노형석 기자
더 나아가 작가는 32m짜리 화폭을 낮에 본 하얀 배경 위주의 풍경과 밤에 본 검은 배경 위주의 네거티브 필름 같은 풍경 이미지로 각각 갈라 제작하고 공들여 깎고 새긴 원판들도 함께 전시했다. 낮과 밤 풍경을 합해 길이 62m에 이르는 한반도 백두대간의 총체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불꽃이나 파도의 규칙적인 너울같이 작가 특유의 조형적인 선으로 양식화한 산세의 도상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를 이루고, 그 위 창공으로 흰꼬리수리가 날아가면서 경치를 부감하는 구도는 목판 원판과 함께 나온 다른 신작 20여점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통일대원도’ 일부분을 옮겨온 듯한 판화 신작. 작가가 ‘한백두’라 이름붙인 흰꼬리 수리가 한라산과 백두산 사이 창공을 날아가는 모습을 새겨 묘사했다. 노형석 기자
지난 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경주 남산 기슭 작업실에서 4년간 고투한 끝에 나온 결실이지만, 실제로는 50여년간 홀로 목판화를 깎고 찍고 구상하면서 쌓은 역량과 내공이 모두 녹아들어 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분단 7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이어진 대자연의 백두대간처럼 남북한 지도자와 민중이 반드시 하나로 만나야 한다는 갈망을 표현했다”면서 “남북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그림을 함께 보는 광경을 꿈꾼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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