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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명장’ 박찬욱의 사진은 어떤 분위기일까

등록 2021-10-12 04:59수정 2021-10-12 08:13

박찬욱 감독 첫 개인 사진전 ‘너의 표정’
전세계 훑고 다닌 시선 30점
“사물과 나의 1대1 대화 순간 포착
영화와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
지난 1일 개인전이 열린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에서 취재진 앞에 선 박찬욱 감독. 그의 옆에 콘크리트 바닥에 남은 신발 자국을 포착한 신작 <페이스(Face) 108>이 걸려 있다.
지난 1일 개인전이 열린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에서 취재진 앞에 선 박찬욱 감독. 그의 옆에 콘크리트 바닥에 남은 신발 자국을 포착한 신작 <페이스(Face) 108>이 걸려 있다.

영화감독 박찬욱(58)씨가 처음 설명을 시작한 작품은 발리섬의 신에게 공물로 바쳤다는 함 속의 과일 사진이었다. 자세히 살피니 바나나 아래 시커먼 것들이 보였다. “가까이 보면 개미들이 꼬여 있어요. 그들은 개미의 형태로 현현한 신일지도 몰라요. 엉뚱한 것들이 먹는다고 볼 수도 있죠.”

전시장 들머리에 걸린 이 사진 앞에서 촬영 작가인 박 감독은 차분한 어조로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풀었다. “어두운 무채색 배경에 도드라진 과일의 색감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다. 내 영화의 룩(시각적 면모)과 닮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출품작을 설명 중인 박찬욱 감독.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찍었다는 2017년 작 과일 정물 사진인 &lt;페이스(Face) 205&gt;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출품작을 설명 중인 박찬욱 감독.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찍었다는 2017년 작 과일 정물 사진인 <페이스(Face) 205>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일 부산 망미동의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3 안에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직접 언론 설명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한 박 감독의 첫 사진 개인전 ‘너의 표정’은 순간 포착한 일상 이미지들이 널린 산책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2010년대 이후 전세계를 무대로 작업하면서 틈틈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 가운데 30점을 골라 이 작품들이 들어간 신작 사진집과 함께 선보였다.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의 명작으로 한국 대표 감독의 반열에 오른 박씨가 사진을 좋아하고 즐겨 찍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사진 동아리에서 작업했고 세계 각지에서 영화 관련 작업을 할 때도 틈틈이 사진 촬영에 몰두한다는 그는 동생 박찬경 작가와 프로젝트 그룹 ‘파킹찬스’를 만들어 2018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사진전을 열었고, 서울 용산 씨지브이(CGV) 아트하우스의 박찬욱관에서 근작 사진들을 번갈아 선보이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2020년 작 &lt;페이스(Face) 127&gt;의 일부분.
박찬욱 감독의 2020년 작 <페이스(Face) 127>의 일부분.

출품작들은 미국, 영국, 일본, 모로코, 인도네시아 등 전세계 도시와 자연의 구석구석과 사물들 사이를 훑고 다닌 시선의 자국들을 보여준다. 블랙홀 같은 크로아티아 상공의 구름 떼, 아침나절 모로코 호텔에서 본 유령 떼 같은 접힌 파라솔들, 심야의 도쿄 거리에서 본 쇼윈도의 드레스 의상, 파주 집 근처 논밭의 마네킹과 단풍 속에 처연한 외할머니의 묘지, 사람 얼굴 같은 변산반도의 암벽과 사하라사막의 돌산 등의 풍경과 정물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그는 “사물과 나의 일대일 대화, 거기서 나온 표정들이 출품작들”이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작 &lt;페이스(Face) 106&gt;.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작 <페이스(Face) 106>.

작품들은 한 주제로 꿰이지 않는다. 세계 곳곳의 정물과 풍경을 좇는 여행가의 널널한 시선들을 집약한 것에 가깝다. 사막의 바위 표면을 사람의 표정처럼 느끼면서 찍은 사진들처럼 사물과 현상의 한순간을 고르는 재기와 감각은 예리하고 기발하다. 굴곡진 콘크리트 바닥에 쑥 들어간 발자국이나 그 위에서 몸 비틀어 털을 핥는 고양이의 나긋한 몸 사진은 강렬한 질감 대비를 드러낸다면, 유령이 걷거나 선 듯한 인상의 비닐비옷이나 방수포를 내건 장면들은 심령 세계와 잇닿아 있다. 박 감독은 적성에 맞지 않는 집단적인 영화촬영 작업이나 관련 일정을 힘겹게 소화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하는 사진 작업의 자유로움에 심취해왔다고 털어놓는다. 사물과 현상들이 스스럼없이 말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포착한 출품작들은 절박한 기다림이라기보다 눈썰미로 순간순간을 집어내는 유희적 과정을 거쳐 태어난 이미지들로 비친다. 그는 설명회장에서 “내 사진은 이미지를 치밀하게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영화와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라고 강조했지만, 상당수 작품에는 현실의 시각 질서를 벗어난 특유의 영화적 감성이 작동하는 듯하다. 함께 웅성거리고 뒷담화하는 것 같은 영국 런던 한 클럽의 대기석 의자 등받이 쿠션들의 돌출된 표정에서 단적으로 이런 감성을 접하게 된다. <친절한 금자씨> 스틸컷들에서 드러났던 서구 바로크 르네상스 예술사에 대한 애착 또한 사진들 곳곳에 자취를 드리우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건축 거장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지은 건물 옆에 갔다가 빛을 받는 용설란 줄기의 실루엣을 포착하고 찍은 사진이 일례인데, 줄기 윤곽선에서 바로크 거장 벨라스케스의 붓질을 떠올렸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2013년 작 &lt;페이스(Face) 205&gt;.
박찬욱 감독의 2013년 작 <페이스(Face) 205>.

거장 빔 벤더스나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집처럼 강렬한 주제의식이나 시선의 심도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부조리한 초현실 상황을 설정해 현실을 투영하는 박찬욱 영화의 스타일처럼 전시장의 사진들은 일상에서 접하는 뜻밖의 비현실적 순간들을 미장센 연출하듯 끄집어내며 관객 각자의 현실과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권한다. 12월19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일부 도판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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