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반가사유상 두점이 검붉은 우주가 담긴 ‘사유의 방’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에 개설된 새 전용 전시실의 모습이다. 최욱 건축가가 디자인한 이 전시실은 12일부터 공개된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검붉은 우주를 담은 방에서 두 분의 부처는 1500년 지나도록 생각에 잠겨있다.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에 걸치고 오른손을 턱에 괸 채 미소짓는 그 모습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 두점이 최욱 건축가가 디자인한 새 전시실에서 관객을 맞는다.
검붉은 우주가 담긴 ‘사유의 방’에서 두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타원형 진열대 위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최욱 건축가의 디자인 설계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에 개설된 전용 전시실이 12일부터 공개된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12일부터 국보 반가사유상 두점을 선보이게 될 상설전시관 2층의 새 전시실 ‘사유의 방’을 11일 언론에 내보였다. 전시실은 439㎡ 규모다. 어둠을 통과하는 긴 진입로에 이어 나타나는 소극장만한 본 전시장,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검붉게 빛나는 벽체,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한 광채를 내쏘는 조명천정 등으로 이뤄진 얼개다. 특히 각 불상 위 천정에는 각각 20개의 특제 조명등이 원형으로 설치됐고, 두 불상 앞 정면 천정에도 6개의 조명등이 일렬로 배치돼 섬세하게 두 상의 윤곽을 부각시키도록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인 프랑스 루브르뮤지엄의 대표작 <모나리자>처럼 두 반가상을 한국 문화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 아래 조성했다.
‘사유의 방’에 놓인 두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가까이서 본 모습. 왼쪽이 국보 78호, 오른쪽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유의 방’ 타원형 진열대 위에 놓인 두구의 국보 반가사유상. 왼쪽이 국보 78호, 오른쪽이 국보 83호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기존 단독상 전시 관행을 벗어나 각기 독특한 조형 요소를 지닌 국보 반가사유상 두점을 나란히 배치해 앞으로 계속 내보인다는 점이 전시 개념의 핵심이다. 6~7세기 고대 한반도 불상의 최고 걸작인 두 상을 독립 공간에서 함께 전시한 일은 역대 세차례(1986년, 2004년, 2015년)에 불과했다. 진열창이 없고, 조도를 조절해 두 상의 몸체에만 집중되는 정밀 조명을 사용한 덕분에 두 상은 훨씬 도드라진 이미지로 대비를 이룬다. 보관과 몸 장식이 화려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국보 78호 불상(높이 81.5㎝)과 부드러운 얼굴과 몸의 형태에 소박한 보관을 쓴 국보 83호 불상(높이 90.8㎝)의 크기와 조형적 차이를 확연하게 실감할 수 있다.
앞서 관객은 전시실 들머리 벽에서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글귀를 읽으며 입장하게 된다. 길게 이어지는 진입통로 벽에는 인간의 마음 속에 울렁이는 희로애락의 상념들을 형상화한 듯한 미디어 영상이 흘러간다. 어두운 실내에서 불상과의 만남에 익숙해지기 위한 전이(轉移)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라고 한다. 본전시장에 들어서면, 타원형 전시대를 따라 반가상의 전체 모습을 사면에서 두루 감상할 수 있도록 널찍하게 공간이 트여있는 것이 눈에 띈다.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부분. 인간의 복잡한 마음 속과 생로병사를 상징하는 듯한 미디어워크 영상들이 통로 벽에 투사된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유의 방’은 중견 건축가인 최욱 원오원 아키텍스 대표가 내부 설계를 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건축가와 협업해 전시공간을 만든 첫 사례다. 최 건축가는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이 일체화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천년 이상 불상에 누적된 기억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와 미래 세대들을 감동시키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중 무료. 작품 해설과 전시 공간 설명은 전시실 벽면에 붙은 정보무늬(QR 코드)를 통해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