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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다…줄리엣을 사랑한 줄리엣

등록 2021-11-17 04:59수정 2021-11-17 09:34

퀴어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재창작
“차별·반대 맞서는 성소수자 얘기”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비극적인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셰익스피어의 서사를 가져왔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단지 원수 가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과 반대를 겪어요. 줄리엣과 줄리엣의 사랑 역시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를 받고 억압과 반대를 겪어요.”(이기쁨 연출가)

“두명의 줄리엣은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결국 비극을 맞아요. 하지만 반대와 차별 앞에 자신들의 현실과 감정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전진하죠.”(한송희 각색가)

지난 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의 이기쁨 연출가와 한송희 각색가는 이렇게 연극을 소개했다. 한송희는 연극에 줄리엣으로 출연도 한다.

연극은 16세기 이탈리아 베로나가 배경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창작한 것이다. 원작과 같은 시대 배경으로, 고유한 정서와 셰익스피어의 문학성을 유지하면서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룬다. 집안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는 설정은 원작과 같다. 하지만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안의 줄리엣 몬터규와 줄리엣 캐풀렛이다. 연극에서 로미오는 줄리엣 몬터규의 남동생으로 나온다.

연극 &lt;줄리엣과 줄리엣&gt; 이기쁨 연출가(왼쪽)와 한송희 각색가. 정혁준 기자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이기쁨 연출가(왼쪽)와 한송희 각색가. 정혁준 기자

원작을 각색할 때 어떤 점을 고민했을까? “원작의 언어를 살리고 싶었죠. 하지만 현재 우리가 쓰는 말과 괴리감 있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 고쳤어요. 다만 원작에서 유명한 ‘순례자의 손’ 같은 표현이나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대사는 줄리엣으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살렸죠.”(한송희)

연극은 캐풀렛 집안에서 열리는 무도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두 줄리엣은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줄리엣 캐풀렛은 커밍아웃 뒤 오빠에게 혐오 섞인 말을 들어야 했고, 어머니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로미오 몬터규는 방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두 줄리엣은 그들의 사랑이 가족과 세상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을 인정받기 위해 그들 앞에 놓인 벽을 넘어서려 한다.

연극 &lt;줄리엣과 줄리엣&gt;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퀴어 연극을 만들 때 고민되는 지점은 뭘까? “극을 진행하기 위해선 갈등 구조를 만들어야 하죠. 그러다 보면 혐오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초연부터 그런 혐오 표현의 강도를 낮추는 데 신경을 썼어요.”(이기쁨)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여성, 퀴어, 소수자는 역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죠.”(한송희)

배우 의상과 무대는 하얀색으로 꾸몄다. “줄리엣들이 그들만의 색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줄리엣들은 연극 마지막에 초록색과 노란색 원피스를 입어요. 자신들의 색, 본연의 색을 찾은 거죠. 하지만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색이 빠져 있는 무채색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죠.”(이기쁨)

연극 &lt;줄리엣과 줄리엣&gt;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공연 장면.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인 스님이 연극에 나와 두 줄리엣의 결혼식 주례를 한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스님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영상을 봤어요. 흥미로웠죠. 그걸 연극으로 가져왔어요. 물리적으로 16세기 유럽에는 스님이 없었겠죠. 하지만 그때도 동성애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한송희)

연극엔 또 다른 성소수자가 나온다. 줄리엣 캐풀렛의 하녀 네릿서다. 그는 자신의 성지향성을 연극에선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유적인 대사로 무성애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줄리엣 캐풀렛의 사랑을 진심으로 지지해준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발코니 장면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연극 전체를 통틀어서 원작과 가장 닮은 장면이지만 가장 새로운 느낌을 받을 거예요. 예를 들면 원작에선 무도회가 끝난 뒤 줄리엣 캐풀렛이 발코니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해주세요. 그러면 나는 캐풀렛이라는 성을 버리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하지만 연극에서는 ‘줄리엣 당신 이름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라고 변주돼요.”(한송희)

<줄리엣과 줄리엣>은 21일까지 대학로 브릭스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연극 &lt;줄리엣과 줄리엣&gt; 포스터.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포스터. 골든에이지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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