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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클린턴·김대중·백남준 ‘바지 퍼포먼스’ 직감으로 찍었죠”

등록 2022-02-14 19:06수정 2022-02-15 02:34

청와대 출입기자 출신 김녕만 사진가
‘대통령이 된 사람들’ 20일까지 전시회
“권력무상 인생무상 표현하고자 기록”
1998년 6월9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던 백남준 작가가 보행이 불편해 금속제 보조기구를 질질 끌면서 클린턴 대통령 앞으로 다가간 순간, 멜빵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하반신 알몸이 성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성기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류가헌 제공
1998년 6월9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던 백남준 작가가 보행이 불편해 금속제 보조기구를 질질 끌면서 클린턴 대통령 앞으로 다가간 순간, 멜빵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하반신 알몸이 성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성기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류가헌 제공

한국이 낳은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은 1998년 6월9일, 세계 현대미술사에 전무후무할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들러리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을 방문한 동맹국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백남준은 당시 미국 수도 워싱턴의 최고 권력 공간 백악관에서 열린 방미 기념 연회장에 초대됐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던 그는 보행이 불편해 금속제 보조기구를 질질 끌면서 클린턴 앞으로 다가갔다. 눈길이 마주친 순간 바로 멜빵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하반신 알몸이 성기와 함께 드러났다. 함께 온 장조카 켄백 하쿠타가 당황해 바지를 추슬러주었다.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곤혹을 치르던 클린턴은 어색하게 웃었지만, 하반신을 드러낸 백남준은 클린턴의 얼굴을 외면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다가 히죽 웃었다. 뒤이어 태연하게 옆자리 김 대통령과 악수하며 이야기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김 대통령 왼쪽에 자리한 클린턴 부인 힐러리였다. 백남준이 병중에 실수한 것인지, 클린턴의 성추문을 풍자한 퍼포먼스인지를 놓고 여러 억측이 쏟아졌지만, 현재 미술계의 정설은 멋드러진 퍼포먼스였다는 쪽에 가깝다.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벌어진 해프닝 직후 사진. 내려간 바지를 추스리며 끌어올린 백남준 작가가 클린턴에 뒤이어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는 클린터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백남준 오른쪽에 서있는 이는 작가의 장조카이자 사후 대리인이 된 켄백 하쿠타. 1998년 6월9일. 류가헌 제공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벌어진 해프닝 직후 사진. 내려간 바지를 추스리며 끌어올린 백남준 작가가 클린턴에 뒤이어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는 클린터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백남준 오른쪽에 서있는 이는 작가의 장조카이자 사후 대리인이 된 켄백 하쿠타. 1998년 6월9일. 류가헌 제공

당시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 가운데 한국 언론으론 유일하게 찍은 이가 다큐사진계의 대가 김녕만(73)씨다. 그가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동 사진 전문 전시장 류가헌에서 열고 있는 사진전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서 백남준의 바지가 내려간 순간과 바지를 추스린 뒤 김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을 담은 두컷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당시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로 방미사진기자단에 동행했던 그는 그날 사진을 찍는 순번이 아니었지만, 원래 순번이던 기자가 몸이 불편해 대신 나갔다가 ‘대어’를 낚았다. “그때 신문에 나갈 만한 주요 브이아이피들이 악수하고 지나가서 방심했죠. 백남준 선생이 따라 나오는데, 찍을 준비가 안 됐어요. 쉬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뭔가 균형이 깨지는 듯한 직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반사적으로 뭔지도 모르고 셔터를 눌렀어요. 나중에 보니까 바지가 벗겨지는 해프닝이 담겼더라고요.”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가장 인상적인 사진으로 백남준 퍼포먼스 사진을 꼽은 그는 “결국 사진가의 의도와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시회와 같은 제목으로 출품작들을 모은 사진집의 작가노트에 썼다.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대통령을 통해 권력무상 인생무상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보니 무엇 하나 소홀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2층과 지하 전시장에는 백남준 사진을 비롯해 2대 대통령 윤보선부터 전두환·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역대 한국 대통령의 삶과 일상을 여백과 틈이란 화두로 집요하게 잡아낸 사진 60여점이 내걸렸다.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경내에 있는 모조 거북선을 살펴본 뒤 ‘머리조심’ 안내판이 붙은 나무틀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나오는 김영삼 대통령. 1996년 3월13일. 류가헌 제공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경내에 있는 모조 거북선을 살펴본 뒤 ‘머리조심’ 안내판이 붙은 나무틀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나오는 김영삼 대통령. 1996년 3월13일. 류가헌 제공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 김영삼 대통령 내외가 트랩 위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원경의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1996년 9월5일. 류가헌 제공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 김영삼 대통령 내외가 트랩 위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원경의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1996년 9월5일. 류가헌 제공

1979년 총에 맞아 절명한 박정희 대통령의 서울 도심 국장 행렬을 시내버스 위에 올라가 지켜보는 장삼이사들의 불안한 표정을 포착한 사진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대통령 사진들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과 재직 시 순시 모습 등이 주된 부분을 차지하지만, 기자를 그만둔 뒤 찍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다.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경내에 있는 모조 거북선을 살펴본 뒤 ‘머리조심’ 안내판이 붙은 나무틀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나오는 모습과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트랩에서 먼 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흔드는 원경으로 부각되는 김영삼 대통령, 서거 뒤 새벽 1시에 서울 도심 추모판의 김대중 대통령 대형사진 위를 초현실적으로 가득 덮은 추모 리본의 밭을 찍은 풍경 등에서 김 작가가 두 김씨 대통령에 지닌 애틋한 감성이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리본들이 분향소 앞 고인의 대형 얼굴 사진을 뒤덮었다. 서울광장, 2009년 8월22일. 류가헌 제공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리본들이 분향소 앞 고인의 대형 얼굴 사진을 뒤덮었다. 서울광장, 2009년 8월22일. 류가헌 제공

“최근 유례 없이 치열한 대선 후보들의 싸움을 보면서 대통령이란 자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40여년간 쟁여두었던 작업들을 풀어내 한번 살펴보자는 생각에 급하게 자리를 마련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시는 2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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