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람이 아니라고?…‘K팝 스타’ 도전하는 가상인간들

로지, 금융사 광고모델 경력
첫 싱글 ‘후 앰 아이’ 발표
정재원 제작 참여…수익 기부

한유아, 방시혁이 반해 유명세
YG케이플러스와 전속계약
이르면 이달말 음원 발매

김래아, LG전자 AI로 탄생
미스틱스토리와 업무협약
윤종신 직접 프로듀싱 예정

가상인간 로지. 로지 인스타그램 갈무리

인플루언서·모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상인간(버추얼 휴먼)들이 ‘케이(K)팝 스타’에 잇따라 도전장을 내며 가요계에 데뷔하고 있다.

국내 가상인간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높은 로지는 22일 첫 싱글 ‘후 앰 아이’를 음원차트와 유튜브에 선보였다. 로지는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만든 가상인간이다. 2020년부터 활동한 로지는 한 금융회사 광고에 나와 주목받았다.

‘후 앰 아이’는 가상인간이 느끼는 로지의 고민으로 시작해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 노래로 몽환적인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 호소력 짙은 보컬이 돋보인다. 가수 볼빨간사춘기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정재원이 제작에 참여했다. 수익 전액은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에 기부된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는 “로지가 ‘영원한 22살’이라는 의미를 담아 2022년 2월22일로 데뷔 일자를 정했다”며 “타인에 의해 나의 가치가 규정되고 판단돼 혼란을 겪는 엠제트(MZ) 세대에게 ‘진정한 자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앨범을 기획했다”고 했다.

가상인간 한유아. 한유아 인스타그램 갈무리

또 다른 가상인간 한유아도 대형 기획사와 직간접적으로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다. 앞서 한유아는 14일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 와이지케이플러스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모델 배윤영과 혜박, 방송인 황보 등이 소속된 모델 매니지먼트사다. 한유아는 와이지케이플러스 소속으로 방송·유튜브·공연·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유아는 스마일게이트와 자이언트스텝이 손잡고 만든 가상인간이다. 자이언트스텝은 최근 방탄소년단 소속사(빅히트뮤직)의 모회사인 하이브가 40억원을 투자한 콘텐츠 제작 업체다. 이에 한유아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반한 가상인간이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한유아는 이르면 2월 말 음원 발매를 앞두고 있다. 한유아 음원이 나오면 블랙핑크 등이 속한 와이지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은경 와이지케이플러스 대표는 “한유아를 대표적인 버추얼 아티스트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가상인간 김래아. 김래아 인스타그램 갈무리

가상인간 김래아도 가수 데뷔를 서두르고 있다. 김래아는 미스틱스토리와 가수 데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미스틱스토리 대표 프로듀서인 윤종신이 직접 프로듀싱할 예정이다. 김래아는 엘지(LG)전자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만든 가상인간으로, 지난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등장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김래아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23살 싱어송라이터 겸 디제이(DJ)라고 소개한다.

가상 걸그룹의 드라마 출연도 예정돼 있다. 펄스나인이 만든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의 멤버 재인은 다음달 선보이는 4부작 코미디 웹드라마에 출연한다. 가상인간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상인간 김래아와 윤종신. 엘지(LG)전자 제공

가상인간은 국외에서도 인기다.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로스앤젤레스(LA)에 산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릴 미켈라는 이미 ‘글로벌 팝스타’다. 미켈라는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브러드가 만들었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음원은 빌보드 차트 47위, 스포티파이 차트 8위까지 올랐다.

이런 가상인간의 원조 격은 1996년 일본에서 만든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다. 우리나라에선 1998년 1월 나온 사이버 가수 아담이 처음이다. 아담은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을 담은 1집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앨범은 20만장이나 판매되며 인기를 끌었다. ‘인간이 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라는 비장한 세계관을 갖고 있던 아담을 소재로 한 소설도 나왔다. 같은 해에 사이버 가수 류시아, 사이다 등도 등장했다.

사이버 인간 아담은 닮은 측면에서만 보면 인간과 거리감이 있었지만, 기술 발달로 요즘 나오는 가상인간은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인간과 닮은 로봇이나 가상인간을 볼 때 처음엔 호감이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기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도 있다. 가상인간의 가수 도전이 이전 선배였던 사이버 가수를 뛰어넘어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혁준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