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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약자의 노래로 상 탄 이랑 “난 겁 많고 아픈 사람”

등록 2022-03-03 04:59수정 2022-03-03 09:10

작년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등 2관왕
“용기 있어서 이 앨범 만든 것 아냐
벌벌 떨면서 나서는 마음 알아줬으면”
지난해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로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가수 이랑. 유어썸머 제공
지난해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로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가수 이랑. 유어썸머 제공

가수 이랑은 요즘 외출을 잘 하지 못한다. 사람 많은 곳에 나가는 게 두려워서다. 그런데도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는 참석했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가장 영예로운 ‘올해의 음반’상을 받으며 그는 이런 소감을 전했다.

“이 앨범과 곡은 제가 남들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할 줄 아는 것뿐인데요,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입니다.”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마녀가 나타났다~)” 가난한 여인은 마녀로 몰리고, 배고픔을 못 이겨 들고일어난 사람들은 폭도·늑대·이단으로 매도된다. 이런 중세 유럽의 광경을 빗대 지금 이 땅에 사는 약자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이랑 3집 &lt;늑대가 나타났다&gt; 표지. 유어썸머 제공
이랑 3집 <늑대가 나타났다> 표지. 유어썸머 제공

“저는 스스로를 대중가수보다 민중가수라고 생각하거든요.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부를 만한 민중가요를 만들고 싶었어요. 다만 민중가요가 아닌 척, 세련되고 멋진 노래여야 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거라 생각해 유럽 빈티지 감성의 우화적인 이미지를 차용한 거죠.” 2일 온라인 화상으로 마주한 이랑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밝았다.

이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던 시절, 조교로 일하던 한받을 만나면서 음악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한받이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를 따라 부르다, 점차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당시 기록용으로 녹음한 걸 모아서 낸 게 1집 <욘욘슨>(2012)이다. 소박한 일상의 노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건강보험료니 공과금이니 세금이니 낼 돈은 너무 많은데, 통장 잔액은 0원이고, 일은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일을 많이 하고 잘할수록 죽음과 더 가까워지는 거예요. 나도 저렇게 일하면서 죽어가야 하는 건가? 그런 당혹스러운 감정을 노래로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낸 게 2집 <신의 놀이>(2016)다. 타이틀곡 ‘신의 놀이’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에 선정됐다.

2017년 시상식에서였다. 이랑은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1월 수입 42만원, 2월 수입 96만원이었다. 상을 받아도 상금이 없으니 이거라도 팔아야겠다”며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트로피는 50만원에 팔렸다. 이는 사실 “예술가로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도 수입이 이 정도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미리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처음엔 ‘시상식에 대한 예의가 없다’ ‘돈 안 되는 걸 하면서 돈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비판이 일더니, ‘남자였어도 이렇게 공격받았을 것인가’ 하는 반론이 일면서 젠더 문제로 옮겨갔다. “그때 페미·메갈이라는 공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무서웠어요. 누가 집에 찾아와 해코지할까 봐 친구 집으로 피신하고, 길에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죠.”

지난해 발표한 3집 &lt;늑대가 나타났다&gt;로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가수 이랑. 유어썸머 제공
지난해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로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가수 이랑. 유어썸머 제공

“공격은 지금도 그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지금도 사람 많은 곳에 잘 못 간다. 그런데도 이번 시상식에 나와 수상 소감을 한 건 “누가 날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벌벌 떨고 울면서 나서는 거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런 마음을 전하면 날 지켜줄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수상 소감의 마지막은 이랬다. “2017년에 제가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때 했던 마지막 인사를 오늘 한번 더 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잘 먹고 잘사세요. 저도 잘 먹고 잘살아보겠습니다.” 그러곤 울먹이며 퇴장했다.

그는 “‘잘 먹고 잘사세요’는 보통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지만, 의미 자체는 좋은 말이다. 의미 그대로 잘 먹고 잘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려운 걸 여러분도 저도 잘 해내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울먹인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도 잘 먹고 잘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럴 자신이 없어 무너지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친구는 그에게 ‘울보전사’란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무서워서 울면서 맨 앞에 나가 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랑이 나타났다. 우리 앞에.

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이랑 수상 소감 전문

안녕하세요, 이랑입니다. 먼저 상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번 앨범으로 정말 많은 호평을 받았고, 저 스스로도 굉장히 좋아하고 자랑스러운 앨범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앨범과 곡은, 제가 남들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저는 말을 할 줄 아는 것뿐인데요. 어릴 때부터 가만히 좀 있으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37년을 살아보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이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저는 자극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 좀 외출을 많이 하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오늘도 살아 있을 수 있게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에 제가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그때 했던 마지막 인사를 다시 오늘 한번 더 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잘 먹고 잘사세요. 저도 잘 먹고 잘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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