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프리다>의 배우 최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프리다가 그랬듯 우리도 당당히 고통과 시련에 맞서 이겨내고 축제를 즐겼으면 해요.”
지난 9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배우 최정원은 이렇게 말했다. 뮤지컬 <프리다>(5월29일까지) 공연을 막 끝낸 그는 청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프리다>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가 죽기 전 마지막 순간을 ‘더 라스트 나이트 쇼’로 꾸민 창작 뮤지컬이다. 최정원은 소아마비와 척추가 부러지는 교통사고를 겪은 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삶과 예술을 향한 강인한 의지를 그림에 담아낸 칼로를 연기한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의 느낌은 어떨까? 아쉬울까, 우울할까, 속 시원할까? “저는 공연이 끝나면 정말 행복해지는 몇 안 되는 배우예요. 공연을 한 후엔 훨씬 힘이 넘쳐요.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요. 마음이 착해져 부탁하는 거 다 들어줄 수 있는 정도예요. 하하.”
뮤지컬 <프리다> 포스터 속 최정원.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에선 프리다 칼로의 분신 같은 3명이 나와 공연을 함께 펼친다. ‘레플레하’는 남편이자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데스티노’는 프리다 칼로가 교통사고 직후 봤다는 죽음을, ‘메모리아’는 꿈과 희망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 가운데 어떤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을까? “모두 자식 같아요. 모두 예쁜 거죠. 나에겐 사랑도 있어야 하고, 죽음도 있어야 하고, 꿈과 희망도 있어야 하니까요.”
프리다 칼로는 어떤 사람일까? “프리다가 쓴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라는 책을 보면 ‘웃음이 없는 인생은 가치 없다’라는 말이 계속 나와요. 아무리 고통이 와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사람, 운명에 꺾이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최정원은 칼로와 닮았다고 했다. 배우 박정자가 첫 공연을 보고 “난 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너를 볼 때마다 프리다 칼로 같다고 생각했어.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케이스 하나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제가 수중분만 하는 모습이 지상파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그때만 해도 배우의 결혼과 출산을 ‘쉬쉬’할 때였죠. 당시 선배님들이 ‘너 배우 인생은 끝났다. 앞으로 젊은 역할은 못 할 거야’라고 하셨죠. 그때도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괜찮아,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 앞에서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이를 만났어’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풀어나갔죠.”
그런 긍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을까, 최정원은 출산한 뒤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한 뮤지컬 <시카고>의 주인공 록시 하트로 화려하게 재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최정원은 뮤지컬에 나오는 넘버(노래) 가운데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는 ‘라비다’를 추천했다. “‘라비다’에 ‘날 살게 한 건 하얀 캔버스. 날 키운 건 까만 로맨스’란 가사가 나와요.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그걸 노래 가사로 바꿨어요.”
지난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프리다>의 배우 최정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프리다>는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된다. “저는 소극장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해요. 표정이나 작은 움직임 같은 디테일한 연기에 신경을 쓰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연습 때부터 더 철저하게 고민해요. 소극장 무대에서는 그런 섬세한 부분을 잘 전달할 수 있죠.”
최정원은 칼로에게 디에고가 있었다면, 자신에겐 ‘무대’가 있다고 했다. “디에고가 프리다 칼로에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었듯이, 무대는 저에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거든요.” 최정원은 커피, 과자, 기름진 음식, 술 등을 안 하며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잘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이유를 물었다. “무대가 날 떠나지 않게 하려고요. 무대가 나를 계속 사랑하게끔 하려고 관리를 하는 거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힘든 고통은 찾아오죠. 칼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당당히 맞서 이겨내고 마지막에 샴페인을 따르면서 내 인생을 위해 축제를 즐겨보면 어떨까요?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는 47살 요절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에 그런 삶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듯 ‘비바 라 비다’란 문구를 새겨 넣었다. 작품명도 ‘비바 라 비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