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시마 하루미의 백자 조형물. <합리성과 불합리성의 공존>이란 제목을 붙였다. 통인화랑 제공
이웃 나라 일본의 미술판에는 점을 잘 찍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가 세 사람이 있다.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우환(86)과 구사마 야요이(93), 나카시마 하루미(72)다. 이우환은 사물들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1960년대 전위화풍 모노화의 선구자. 텅 빈 캔버스에 단 하나의 점만 찍거나 여러 개의 연속적인 점들을 찍는 연작은 70년대 일본 화단에 첫 등장한 이래 시장의 블루칩으로 군림하고 있다. 누런 단호박에 온통 점을 찍은 구사마 야요이의 그림과 조형물은 세계 미술계에서 작가의 거장성을 알리는 등록상표처럼 통용된다.
지난달 중순부터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 개인전을 차린 도예가 나카시마 하루미는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지난 30여년간 백자 덩이에 점을 찍으며 일본 도예계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장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증식·생장하는 세포 덩어리 같은 인상을 주는 백자 조형물 표면에 푸른빛 점을 촘촘하게 채워 넣은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 벽을 빙 두른 점묘의 백자 덩어리들은 특정한 단면을 규정지을 수 없고 보는 각도마다 다른 형태로 다가온다. 유기적 형태와 율동감 때문에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변형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점은 일본 미술에서 각별하게 중시하는 조형 요소다. 점들이 모여 선(線)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이 수행하는 선(禪)이 되며, 작업 태도를 가다듬는 선(善)으로 승화된다. 두번 구워낸 나카시마 하루미의 백자 작품들은 점에 깃든 일본적 미학을 서구 입체파, 초현실주의 사조로부터 받은 개인적 영감과 융합시키면서 현대 도예의 맥락에서 구현해낸 산물들이다.
유년 시절 벽돌공장 노동자였던 부친이 준 진흙을 갖고 놀면서 도예가의 꿈을 키웠다는 작가는 마음대로 빚으며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가역성’과 ‘가슴 설레는 삽삽한 맛’을 흙 작업의 매력으로 꼽았다. 일본 미노국제도예콩쿠르에서 동상(1989년)과 금상(1995년)을 받았고, 마이니치 일본도자학회상(2010년)도 수상했다. 전시회는 13일까지 열린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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