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 빛과 소금(왼쪽부터 박성식, 장기호). 사운드트리 제공
“새 앨범도 ‘빛과 소금’이 지금까지 해온 스타일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다만 이번엔 장기호와 박성식의 색이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박성식)
1990년대 한국 퓨전 재즈의 시작을 알렸던 듀오 빛과 소금(박성식·장기호)이 26년 만에 새 앨범을 내면서 돌아왔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처음이다.
26년 만에 앨범을 낸 계기는 무엇일까? “원래 데뷔 30주년을 맞은 2020년에 새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늦춰졌어요.”(장기호) 두 사람 모두 대학의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강단에 서다 보니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녹음은 지난해 여름에야 마쳤다.
지난달 26일 나온 6집 앨범의 이름은 <히어 위 고>(Here We Go)다. 새 앨범에는 ‘블루 스카이’(Blue sky), ‘오늘까지만’ 등 2개의 타이틀곡을 포함해 10곡이 담겼다.
듀오 빛과 소금(왼쪽부터 장기호, 박성식). 사운드트리 제공
이번 앨범은 두 사람이 각각 5곡씩 ‘따로 또 같이’ 만들었다. 각자 자신이 만든 곡을 책임지고 프로듀싱했다. 박성식은 “저희의 음악에 좀 예민한 촉을 가진 팬이라면 이전 앨범과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26년 만에 나온 앨범에는 새로운 시도가 여럿 보인다. ‘블루 스카이’는 영어와 한국어 버전으로 만들었다. “한류와 케이팝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영어 버전을 먼저 만든 뒤 한글 버전을 만들었죠.”(장기호) ‘블루 스카이’는 데뷔 이후 처음 뮤직비디오도 만든 곡이라서 애정도 남다르다고 한다. 비(B)급 감성으로 만든 이 뮤직비디오에서 두 사람은 이전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춤을 추기도 한다. 어설퍼 보이는 춤사위에도 ‘빛과 소금’만의 유쾌하고 코믹한 감성이 스며 있다. ‘오늘까지만’은 래퍼 서출구와 협업해 처음으로 노래에 랩을 실었다.
서로의 노래를 한곡씩 추천해달라고 했다. 박성식은 장기호가 만든 ‘로스트 데이스’(Lost Days)를 꼽았다. “화성은 아주 복잡한데, 듣기는 너무 편안해서 칭찬해주고 싶은 노래예요.” 장기호는 박성식이 만든 연주곡 ‘비 오는 숲’을 선택했다. “피아노 솔로곡 느낌을 주는 곡이죠. ‘빛과 소금’이란 이름에 걸맞게 가스펠 느낌을 줍니다.”
빛과 소금 6집 앨범 <히어 위 고>. 사운드트리 제공
‘빛과 소금’은 1990년 1집 앨범 <빛과 소금>을 내며 데뷔했다. 이 앨범에 세련되고 감각적인 멜로디와 사운드의 ‘샴푸의 요정’이 실리면서, 듀오는 시티팝의 원조 그룹으로 불렸다. “‘샴푸의 요정’은 드라마에 실린 노래인데, 당시 대중음악은 발라드로 획일화돼 있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기법을 노래에 담으려 했죠.”(장기호)
‘빛과 소금’은 성경에 나오는 말에서 가져왔다. “‘빛과 소금’이라는 이름이 자체 검열 시스템이기도 했죠. 예를 들면 가사를 쓸 때 표절하지 않고, 술·담배·섹스 같은 내용은 걸러냈어요.”(박성식)
‘샴푸의 요정’은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아르앤비(R&B) 가수 정기고, 그룹 마마무 멤버 겸 솔로 가수 화사 등이 리메이크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샴푸의 요정’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댓글 90% 이상이 영어더라고요. 한국 아이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장기호)
박성식이 살짝 거들었다. “1990년대 노래가 가사·선율·편곡·화성 진행이 좋았어요. 특히 ‘샴푸의 요정’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여서 아이돌도 선택하는 것 같네요.”(박성식)
듀오 빛과 소금(왼쪽부터 박성식, 장기호). 사운드트리 제공
장기호가 ‘샴푸의 요정’을 만들었다면, 박성식은 김현식이 불러 히트한 ‘비처럼 음악처럼’을 만들었다. “군대에 있을 때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죠.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이였는데 이별 선물로 만든 피아노 소품곡이 ‘비처럼 음악처럼’이었어요.” 이 노래는 <김현식 3집>(1986) 타이틀곡으로 실렸고, 김현식이 인기 절정의 발라드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빛과 소금’과 ‘봄여름가을겨울’은 듀오 밴드인데다 퓨전 재즈를 추구하는 점에서 자주 비교되곤 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우리보다 좀 더 약간 록적인 성향이 강했죠. 록이 재즈보다 대중친화적이잖아요. 그래서 대중이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해요.”(박성식)
앞으로 계획은 어떨까? “‘빛과 소금’ 팬이 젊은층으로 확산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분들의 기대에 실망하지 않는 좋은 음악으로 뵙고 싶어요.”(장기호)
“26년 만에 낸 앨범을 계기로 새로운 음악을 연구하고 고민할 계획입니다. 코로나가 좀 잦아들었으니 전국 투어도 논의하고 있어요.”(박성식)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