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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5년 만에 돌아온 마타하리 ‘날 팜파탈에 가두지 마’

등록 2022-06-08 09:00수정 2022-06-08 09:10

28일부터 국내 세번째 뮤지컬 공연
자신의 운명 개척하려다
시대에 희생된 여인에 초점
노래·의상·무대장치 돋보여
뮤지컬 <마타하리> 홍보 영상 갈무리.
뮤지컬 <마타하리> 홍보 영상 갈무리.

‘내 운명에 당당히 맞설게/ 아픔을 잊은 채/ 어떤 미움도/ 후회조차 남지 않도록’.

붉은빛 자수가 수놓인 드레스를 입은 마타하리가 ‘마지막 순간’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무대에서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는 가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래하는 장소는 사형장이다. 마타하리가 손 키스를 날리자 총소리가 울린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정부에 체포돼 총살당한 마타하리(본명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6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지난달 28일 5년 만에 삼연으로 들어갔다.

뮤지컬에서 주인공 마가레타는 파리에서 관능미 넘치는 춤사위로 동양에서 온 신비한 여인으로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끄는 무희가 된다. 자신의 이국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이름을 마타 하리(말레이어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로 고친다. 마타하리는 조종사인 아르망 소위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프랑스 정보당국 최고책임자인 라두 대령의 계략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마타하리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하지만 끝내 비극적 종말을 맞는 인물로 등장한다. 뮤지컬에서 그의 이미지는 세간에 알려진 팜파탈보다 시대에 희생된 여인으로 다가온다. 마타하리가 힘들 때마다 옆에서 말없이 춤을 추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마타하리의 또 다른 자아다. 대사 없이 춤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그는 마타하리의 해맑았던 어린 자아를 상징한다.

뮤지컬 &lt;마타하리&gt;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장면마다 완전히 달라지는 무대는 또 다른 볼거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한복판을 기본 무대로 삼아 풍요로운 파리가 전쟁으로 어둠의 도시로 전락하는 모습을 무대 전환을 통해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여느 뮤지컬과 달리 장면이 특별한 암전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점도 돋보이는 지점이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시선을 잡아끈다. 세트가 180도 돌아가면서 한쪽에선 파리의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여인들이, 반대편에선 전쟁 참호에 있는 군인들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처한 상황, 성별 등의 대비로 극적인 신선함을 선사한다. 마타하리가 탄 기차가 무대에서 한바퀴 돌면서 관객을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이끄는 장면도 눈에 띈다.

다채로운 의상은 시각적인 재미를 더하고, 인물을 더욱 매혹스럽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뮤지컬 넘버는 마타하리의 내면과 사랑을 노래하는 감성적인 노래부터,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전투 장면까지 담았다. 고음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폭발적인 고음 넘버를 자주 들을 수 있는 점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다만 마타하리가 스파이가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1막이 다소 지루하고 느슨해진 점은 옥에 티다. 마타하리와 아르망의 서사도 다소 아쉽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은 개연성이 부족하고, 아르망은 남자 주인공이지만 평면적인 캐릭터여서 존재감이 약하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조연인 라두 대령이 좀 더 인상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뮤지컬 &lt;마타하리&gt; 포스터.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타하리> 포스터.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을 쓴 극작가 아이번 멘첼은 “마타하리는 주변 남성들이 지시한 삶 대신 스스로 삶을 선택했지만, 그런 선택은 마타하리를 범죄자(스파이)로 만들었다”며 “마타하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여성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했다.

마타하리는 옥주현과 솔라가 맡았다. 아르망은 김성식·이홍기·이창섭·윤소호, 라두 대령은 김바울·최민철이 연기한다. 공연은 8월15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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