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이가 작업 초창기부터 해온 꽃튀김 연작의 올해 신작. 정식 제목은 <레이트 클래시컬>(Late Classical) 연작이다. 피고 시드는 한시적 존재인 꽃송이를 기름에 튀긴 뒤 투명수지 레진을 씌우면서 박제된 상태로 만든다. 이 박제된 꽃송이를 붙인 유리판 안에 차갑고 단단한 금속제 아령을 배치해 작가는 자연의 유동성과 인공물의 고정성을 색다르게 대비시킨다.
꽃을 기름에 튀겼다. 작가가 ‘템푸라 플라워’라고 이름 붙이니 작품이 됐다.
이 꽃튀김 혹은 튀긴 꽃송이들이 허공을 떠다닌다. 사실은 큰 유리판 위에 튀김꽃들을 가득 붙여 날리는 척해 놓은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 ‘템푸라’ 꽃송이들과 함께 어울린 것은 유리판 뒤쪽에 놓인 금속제 아령이다. 아령 덩어리가 은빛을 뽐내며 기름기 잘잘 흐르는 꽃송이들과 뒤섞이자, 자연스럽게 몽롱한 미감을 자아냈다.
지금 서울 청담동 사거리 글래드스톤 갤러리에 마련된 재미 한국계 작가 아니카 이(51)의 개인전 ‘비긴 웨어 유 아’(Begin Where You Are)의 전시 현장은 흥미진진한 이분법 탐구 공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와 일상을 가로지르는 여러 존재들의 상반되는 속성을 짚어주면서 한편으론, 그 경계를 타고 넘으며 분리와 분할의 질서를 무화시키는 특유의 공력을 표출한다.
아니카 이의 개인전에 선보인 곤충집 모양의 발광등 작품. 레진 수지를 재료로 표면이 벌집이나 개미집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로 등갓을 만들었다. 안쪽에는 흘러가는 시간이 표시되는 디지털시계가 매달려 있다. 모든 존재는 시공간에 얽혀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이런 작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지하에 펼쳐져 있다. 작업 초창기부터 해온 꽃튀김 연작의 올해 신작이다. 정식 제목은 <레이트 클래시컬>(Late Classical·사진) 연작. 피고 시드는 한시적 존재인 꽃송이를 기름에 튀긴 뒤 투명 수지 레진을 씌우면서 박제된 상태로 만든다. 이 박제된 꽃송이를 붙인 유리판 안에 차갑고 단단한 금속제 아령을 배치한 얼개를 통해 작가는 자연물의 가변성과 인공물의 불변성을 색다르게 대비시킨다. 그 아래 바닥에 펼쳐진 곤충집 모양의 발광등 작품들도 곱씹어 보는 맛이 남다르다. 레진 합성수지를 재료로 표면이 벌집이나 개미집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의 등갓을 만들었는데, 그 표면에는 알 같은 작은 덩어리들을 옹기종기 붙여 작가가 자연과 생명의 유기적 속성을 형상화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등갓 안쪽에는 시간이 표시되는 디지털시계가 매달려 모든 존재는 시공간에 얽혀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는 ‘치킨 스킨’ 연작은 닭살로 직역할 수 있는데, 부드러운 실리콘 액자 위에 낚싯줄을 가시처럼 심어 털이 뽑힌 닭의 살집을 연상시키면서 공포나 충격에 경직된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을 형상화한다. 일본 적군파의 리더나 고대 이집트의 여왕 등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을 향으로 재현한 향수 소품들도 돋보인다.
작가는 두살 때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 가족 출신이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다 2010년대 이후 국제미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2016년 구겐하임 미술관의 휴고보스상을 받았다. 냄새, 유기물, 기계 등이 결합된 독특한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에 울림을 던진 스타 작가가 처음 한국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7월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