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여수 바다, 73년 전 학살의 바다는 이런 빛이었을까

등록 2022-09-27 07:00수정 2022-09-29 03:06

2022 여수국제미술제 전시 현장
‘푸른 구슬의 여정’ 전체 주제로
본전시와 특별전 함께 열려
여순사건 다룬 첫 대규모 전시
특별전 ‘인간의 경계’에 나온 홍원표 작가의 제목 없는 모피 그림(부분, 2022). 노형석 기자
특별전 ‘인간의 경계’에 나온 홍원표 작가의 제목 없는 모피 그림(부분, 2022). 노형석 기자
74년 전 숱한 남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학살의 바다가 바로 이런 빛을 띠고 있었을까.

모피로 이뤄진 융단 캔버스 위에 진홍색의 핏빛을 띤 바다가 넘실거린다. 전남 여수에서 작업해온 홍원표 작가의 신작은 허연 모피 표면의 털을 깎아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여수읍 해변과 애기섬에서 학살된 양민들의 피로 물든 듯한 바다 모습을 형상화했다. 남해 쪽에서 여수 읍내와 섬을 조망하며 바라본 융단 위 바닷가의 풍경은 얼룩 같은 붉은빛의 불균형한 화면 속에서 수평선 위의 섬만 간신히 보일 뿐 그 뒤에 있을 여수 읍내는 구름과 안개 같은 이미지에 싸여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다. 불안하고 불길했던 비극적인 과거의 역사적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지금 현실을 암시하는 그림이다.

D2 전시장에 나온 박동화 작가의 풍경화 <도성영가>. 노형석 기자
D2 전시장에 나온 박동화 작가의 풍경화 <도성영가>. 노형석 기자
D1 주제전 전시장에 나온 허태원 작가의 화분 설치작품 <푸른 초상들>. 노형석 기자
D1 주제전 전시장에 나온 허태원 작가의 화분 설치작품 <푸른 초상들>. 노형석 기자
붓 대신 가위와 칼을 들고 융단 화폭을 파들어간 이 독특한 작품은 전남 여수 엑스포 전시관에 차려진 2022 여수국제미술제의 특별전 ‘인간의 경계’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70여년간 금기시됐던 여순사건을 역대 처음 대규모 미술 전시의 주제로 삼아 23명의 작가들이 관련 작품을 출품했다. 홍 작가의 융단화 말고도 동백꽃 조화와 돔을 형상화한 생선 조형물에 여순사건의 사진 이미지를 입힌 김기희 작가의 혼합매체 작품과 당시 처참한 현장의 기억을 살린 지역 작가들의 핍진한 그림과 글씨들이 나왔다.

10년 전 디지털 기기 전람회와 첨단 미디어영상쇼가 펼쳐졌던 엑스포 전시관은 이달 초부터 여수국제미술제가 펼쳐진 거대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올해로 12회째인 미술제의 주제는 지구의 환경 생태 변화를 뜻하는 ‘푸른 구슬의 여정’.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 43명이 주제에 연계해 내놓은 신구작 110점을 엮어 보여주는 본전시와 여순사건을 다룬 지역작가 특별전이 어우러졌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기획자로 활동했던 박순영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은 이번 행사의 출품작들 상당수는 위기를 맞은 지구 환경 생태에 대한 고민과 자연·인간의 공생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것들이다.

D1 주제전 전시장에 나온 김결수 작가의 설치작품 <노동과 유효성>. 노형석 기자
D1 주제전 전시장에 나온 김결수 작가의 설치작품 <노동과 유효성>. 노형석 기자
D1 전시장에 나온 김결수 작가의 설치작품 <노동과 유효성>은 층층이 쌓아 새끼로 묶은 볏짚단 사이에 물을 뿌리고 순무를 자라게 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노동이 곧 예술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담았다. 이 설치작품 뒤로 한국 전위미술의 대가인 원로 작가 이승택씨의 평면·입체작품인 <생과 사> <지구행위> <바람> 등이 펼쳐진 것도 인상적이다. 그 안쪽엔 허태원 작가의 화분 설치작품 <푸른 초상들>이 놓여졌다. 도시 곳곳에서 버려진 푸른빛 화분들을 모아 선반 안에 집적시킨 그의 작품은 한곳에 뿌리박히지 못하고 떠돌곤 하지만, 한편으론 화분에 식물을 키우는 행위를 통해 정착하고 적응하려는 본능도 발산하는 현대 도시인의 속성을 짚어낸 수작이다. D2 전시장에선 박동화 작가의 풍경화 <도성영가>가 눈길을 끈다.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한센인 환자 정착촌 도성마을의 적적하면서도 강렬한 풍경을 아크릴 물감을 써서 그려냈다. 서구 거장 올라퍼 엘리아슨이 아프리카 오지 아이들의 밤 공부를 돕기위해 만든 휴대용 태양열 조명등 <리틀선>과 덴마크 작가 듀오가 접어서 가져온 뒤 펼친 뗏목 모양의 조형물은 난민과 빈곤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 보여준다. 10월3일까지.

여수/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1.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2.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3.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4.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최근 50년 ‘한국 독립영화 최고작 20편’은? 5.

최근 50년 ‘한국 독립영화 최고작 20편’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