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배우 김지미가 자신이 주연한 영화 <정열 없는 살인> 개봉을 맞아 경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품 추첨함을 열고 있다. 스페이스22 제공
62년 전 배우 김지미와 경찰관이 나란히 찍힌 특별한 기념사진(?)이 세상에 다시 나왔다. 4월 혁명 직후인 1960년 9월, 김지미는 자신이 주연한 영화 <정열 없는 살인> 개봉을 맞아 서울 도심 영화관에서 경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념 경품 추첨함에서 추첨지를 꺼냈는데, 이를 당시 30대 사진가 김한용이 잽싸게 포착했다. 굳은 얼굴로 선 경찰관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던지며 연기하듯 추첨지를 꺼내는 당대 최고 배우의 자태가 어우러진 한 순간이 영원으로 남았다.
이 사진은 지금 서울 강남역 인근 미진빌딩 22층에 있는 사진전시장 ‘스페이스22’에 내걸려 있다. 전시장 벽면은 60여년 전 한국 영화판의 스타 배우들을 당대 그 얼굴 그 모습대로 붙박아놓은 사진들로 채워졌다. 굴다리 밑 잡초밭에서 잔뜩 인상 쓰면서 연기하는 김진규, 조선시대 궁중복식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의 표정을 짓는 허장강, 1950~60년대 서울 도심 거리에서 선물상자를 받아 안고 영화감독과 함께 선 젊은 엄앵란….
이 독특한 사진전 제목은 ‘스틸컷: 1950-1960년대 김한용 아카이브’. 찍은 이는 1970년대 광고사진의 대가였던 김한용(1925~2015)이다. 광고사진에 발들이기 전인 1950년대 중후반~60년대 초 제작한 주요 영화의 스틸컷 500여점을 고인의 1만여점 아카이브 가운데서 추려 처음 공개했다.
보도사진을 찍으며 사진계에 입문한 김한용은 당시 영화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스틸 사진을 찍었다. 작가는 신상옥 감독의 <꿈>(1955)을 시작으로 <구원의 정화>(1956),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 <죄 없는 청춘>(1960), <정열 없는 살인>(1960), <악의 꽃>(1961), <귀향>(1962), <인목대비>(1962) 등 영화 13편의 스틸컷을 남겼는데, 전시장에 이를 간추려 놓았다. 명배우들이 갖가지 표정과 포즈를 취한 영화 장면들 외에도 감독과 스태프들의 작업 장면, 국제·아카데미·명보·대한극장 등 당대 유명 영화관 안팎에 모여들어 영화를 즐기고 스타에 열광했던 당대 대중의 모습들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사 홍보자료로 활용했던 김한용의 스틸컷들은 관련 영화 원본들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황이어서 50~60년대 영화사 단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들이다. 당대 영화를 소비한 대중의 풍속도와 배우들을 동원한 홍보 캠페인, 당대 영화관의 건축적 공간도 상당 부분 담고 있어 당대 도시문화 시공간에 대한 가장 적실한 현장 보고 기록으로도 값지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 근현대 사진 아카이브 정리 작업을 주도했던 기획자 한금현씨가 전시를 꾸렸다. 25일까지.
작가의 영화 촬영 아카이브를 망라한 <스틸컷: 1950-1960년대 김한용 아카이브>(이안북스)란 책도 함께 나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