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노래이야기집 펴낸 민중가요 작곡가 이성지씨
“추모곡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만든 게 가장 큰 보람”
“추모곡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만든 게 가장 큰 보람”

민중음악 작곡가 이성지씨가 지난 4일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내 노래가 그대에게> 표지.
1986년 김세진·이재호 죽음 ‘애도’
미국 유학 박사…20여 년 학원 운영
“교수 포기했지만 제자들 많아 뿌듯” 작곡 인생 40년 ‘내 노래가 그대에게’
“장애로 서툰 감정 표현 노래로 소통” 1997년 귀국한 그가 교수가 아닌 학원 강사의 길로 나간 데는 유학 중 친해진 80년대 장애인 학생운동가이자 대학 선배인 최민씨 영향이 컸단다. 서울대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그무렵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최씨의 제안으로 주말이면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치다 2000년 아예 학원을 인수했다. “민이 형이 학원 적자가 심하다며 저한테 넘기든지 아니면 문을 닫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1년 정도만 기다리면 교수 임용이 될 것 같아 갈등이 심했죠. 하지만 폐업 만은 막아달라는 동료 강사들과 직원들 바람을 모른 체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해 한때는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 일산 4곳에서 학원을 꾸렸던 그는 지난 3월 학원을 정리하고 지금은 강사로만 전념하고 있다. 22년 전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교수가 되지 않은 게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금 지방대를 보면 대학원에 학생이 없어 제대로 연구할 수도 없잖아요. 제가 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주로 과학고 재학생이나 지망생입니다. 이해 정도나 속도가 뛰어나 저도 물리를 계속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학원에 가기 전 몸이 힘들어도 수업만 들어가면 피곤이 사라져요. 이 일이 천성 같아요.” 그는 제자 중 100명 가까이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했고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 중인 제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유학 중에도 ‘뉴욕 우리문화찾기회’ 창단 공연(1990)을 이끌고, 이 단체 정책실장을 맡아 문화 행사를 여는 등 노래운동과의 연을 놓지 않았다. 그의 노래 ‘망월동, 1993년 여름’(1993)은 방학 때 잠시 귀국해 들른 광주 망월동 윤상원 열사 묘지 앞에서 “엉엉 통곡을 한” 뒤 만들었고 ‘하늘’(1995)은 노래운동 후배 고 김광석이 세상을 뜨기 몇 달 전 뉴욕에서 만나 “형, 노래 만든 것 없수?”라고 한 물음에 화답해 만들었다. 이 곡은 결국 김광석에게 전해지지 못 하고 그가 2005년에 낸 첫 앨범 <회상하기(Reminiscence) 80'S: 작곡가 이성지 노래모음집>에 메아리 후배 이자람 목소리로 수록됐다. 그는 책에서 첫 노래 ‘부활하는 산하’(1985)가 공연 한달쯤 만에 신촌역 근처 선술집에서 대학생들 떼창으로 불리는 것을 들었을 때 오싹했던 소름과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썼다. 세상 태어나 제일 잘 한 게 지금은 장성한 두 아이를 낳아 키운 것과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쓴 것이라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노래란 뭔지 물었다. “세상과 하는 대화이죠. 어려서부터 장애 때문에 ‘다리 병신’이라는 놀림을 많이 받아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대중 앞에 서는 공포도 있고요. 대화할 때도 자기 표현을 잘 못 하는 편입니다. 노래를 쓰면서 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거죠. 노래는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창구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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