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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못다한 건축열정, 용암 끓던 대지에 우뚝 서다

등록 2022-12-07 07:00수정 2022-12-08 18:16

제주 이타미 준 미술관 개관
이타미 준 미술관 후면. 앞쪽에 제주섬 특유의 용암 흐른 대지 바닥의 흔적인 빌레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이타미 준 미술관 후면. 앞쪽에 제주섬 특유의 용암 흐른 대지 바닥의 흔적인 빌레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11년 전 고인이 됐어도, 한국 건축판에서 존재감은 여전히 묵직하다. 재일동포 건축 거장 이타미 준(유동룡, 1937~2011)의 자취를 좇으려는 팬들은 차고 넘친다. 그가 포도송이 모양으로 설계한 제주 포도호텔 건물을 보려고 예약 경쟁을 벌인다. 호텔 인근에 물과 바람, 돌을 화두로 지은 연작 건축물인 수풍석뮤지엄과 방주교회를 감상하는 건 명품 사는 것과 비슷한 취향(혹은 횡재)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가 남긴 흔적들이 제주섬의 새 미술관에서 안식을 취하며 관객들과 만남을 시작했다. 현대 건축의 인공적 속성과 단호히 담을 쌓으면서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건축의 본질을 물질 재료에 대한 깊고 뜨거운 탐구로 풀어냈던 거장의 자취를 부려 모은 이타미 준 미술관이 5일 개관했다.

작업실에서 찍은 이타미 준의 말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작업실에서 찍은 이타미 준의 말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6일 언론에 공개된 이타미 준 미술관 정면. 노형석 기자
6일 언론에 공개된 이타미 준 미술관 정면. 노형석 기자

터를 잡은 곳은 한림읍 저지예술인마을의 김창열 미술관 부근 용암대지. 끓는 용암이 흘렀던 과거 대지 바닥의 흔적인 빌레 위에 이타미 준의 꿈을 담은 유언이 실현된 것이다. 제주섬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르며 말년 이곳에 건축적 열정을 쏟아내며 숱한 걸작 건축물을 남겨놓은 뒤 세상을 떠난 거장의 철학과 생각의 흐름을 드로잉과 그림, 설계 모형 등 아카이브로 엿볼 수 있는 예술가의 영생처다.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이 2020년 대지를 사들인 뒤 고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씨가 연면적 675㎡, 지상 2층 규모로 설계한 이 건물은 작가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돌출형 탑 구조물이 있는 ‘어머니의 집’과 완만한 지붕을 지닌 제주 민가 모습을 절충해 결합시킨 모양새를 띠고 있다. 5~6일 언론에 공개된 이타미 준 미술관은 평생 자연과 인간의 매개로서의 건축을 중시했던 고인의 뜻을 새겨보게 하는 얼개를 지녔다. 건물 안에는 3개 전시실과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과 티 라운지가 들어서 있다. 건축물 자체의 독창성이나 조형적 언어보다도 아름다운 현지 자연을 눈앞에 조망하게 한 열린 구조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제주 특유의 자연 대지 풍경을 내부에서 창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1층 원형 도서 열람 공간에 난 반구형 통창과 차를 마시며 사색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다른 쪽 다담 공간에 난 창이 그 통로다. 2개의 창을 통해 용암대지 위에 자리잡은 제주 특유의 숲인 곶자왈과 기생화산 오름, 그리고 수만년 전 용암이 흘러나갔던 바닥 흔적인 돌빌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내부 1층 라이브러리 ‘먹’ 공간. 외부에서 보이는 타원형 덩어리 공간이 내부 로비의 한가운데로 관통되어 들어오는 얼개를 띤다. 노형석 기자
내부 1층 라이브러리 ‘먹’ 공간. 외부에서 보이는 타원형 덩어리 공간이 내부 로비의 한가운데로 관통되어 들어오는 얼개를 띤다. 노형석 기자

1층 라이브러리 서재 옆에 난 반원형 통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밀려들고 있다. 창 너머로 과거 용암이 흘렀던 대지 바닥의 흔적인 ‘빌레’와 제주 특유의 암반 숲인 곶자왈의 풍경을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층 라이브러리 서재 옆에 난 반원형 통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밀려들고 있다. 창 너머로 과거 용암이 흘렀던 대지 바닥의 흔적인 ‘빌레’와 제주 특유의 암반 숲인 곶자왈의 풍경을 고즈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재단 쪽은 이 미술관이 개인의 독창성과 정체성 회복을 돕는 복합문화공간이 될 거라고 밝혔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1층 내부 원통형 통창과 서재로 이뤄진 도서관 공간을 보게 된다. 감상은 2층 3개 전시실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첫 전시로 이타미 준의 40여년 건축 작업을 회고하는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전이 차려졌다. 재일동포 건축가로서 본명 대신 이타미 준이란 예명을 쓰면서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이를 재료에 대한 본질적 탐구로 발현했던 주요 건축물 도면과 주요 콘셉트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용머리 장식이 수문장처럼 서 있는 작업실 풍경을 복원한 공간과 수풍석뮤지엄으로 대변되는 말년 제주 건축 걸작들을 배치한 2전시실이 주목된다. 3전시실은 영상 전시실로 이타미 준의 인터뷰 영상과 여러 건축가들이 말하는 기록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2층 전시실 내부. 제주에 건립한 작가 말년의 걸작들인 수풍석뮤지엄과 방주교회, 포도호텔의 건축 드로잉과 모형, 영상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2층 전시실 내부. 제주에 건립한 작가 말년의 걸작들인 수풍석뮤지엄과 방주교회, 포도호텔의 건축 드로잉과 모형, 영상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전시를 보고 나면 빌레와 곶자왈이 보이는 1층 라이브러리와 티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며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순서가 기다린다. 라이브러리 ‘먹’ 공간은 외부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타원형 탑 모양의 덩어리 공간이 내부 로비의 한가운데로 관통돼 들어오는 얼개를 띤다는 점에서 이 미술관의 가장 도드라진 건축 어휘가 된다. ‘먹’의 반원형 서재에선 작가가 평소 수집했던 민예품과 도자기 등 고미술품, 친필 글씨, 작가론을 담은 책들과 건축 관련 서적들도 볼 수 있다. 더 안쪽의 티 라운지에서는 제주 특산 차를 마실 수 있고, ‘이타미 준 에디션’ 이름이 붙은 아트숍에서는 이타미 준의 건축 드로잉으로 만든 아트 프린트 작품과 의자 등으로 구성된 ‘이타미 준 마스터피스’, 젊은 창작자들이 이타미 준에게 받은 영감으로 만든 아트 상품들을 전시·판매한다.

1층 라이브러리 ‘먹’의 반원형 서재 모습. 작가가 평소 수집했던 민예품과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 친필 글씨, 작가론을 담은 책들과 건축 관련 서적들을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층 라이브러리 ‘먹’의 반원형 서재 모습. 작가가 평소 수집했던 민예품과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 친필 글씨, 작가론을 담은 책들과 건축 관련 서적들을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입장료는 성인 기준 3만2천원. 12월 한달 동안 개관 기념 10% 할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제주도 내 건축 전공 학생들은 미래 건축가를 지원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무료 관람할 수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사전 예약 및 예매로만 운영한다.

제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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