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하 큐레이터가 22일 컬렉션전 ‘사진이 걸린 방’이 열리고 있는 류가헌에서 작품 구입에 얽힌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진 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오는 3월5일까지 열리는 사진전 ‘사진이 걸린 방 ’은 사진가가 찍은 작품 전시가 아니다. 사진 전문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최연하 큐레이터가 개인적으로 간직해온 컬렉션에서 27점을 뽑아 소개하고 있다 . 전시 제목도 자신의 집 거실과 안방에 걸려있던 액자를 그대로 옮겨왔다는 뜻으로 붙였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 전공을 했고, 기자로서 글로 사진을 소개하다 기획까지 하게 됐어요. 그렇게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한 지 올해 20년을 맞았죠. 지난해 ‘경기포토페스티벌’을 비롯해 ‘거리의 기술’(2021년), ‘서울사진축제’(2008·2016년) 등 70여 회의 전시를 큐레이팅했어요. 그런데 줄곧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공유하는 시대가 왔는데 작품이 거래되는 사진 시장은 외려 정체된 것 같아 답답했거든요. 사진의 생산·유통·소비의 선순환을 창출하는 데 미약하나마 자극이 됐으면 해요.”
지난 22일 류가헌에서 최 큐레이터를 만나 이번 사진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새달 4일에는 최 큐레이터와 박미경 류가헌 관장,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진행하는 큐레이터 토크 ‘지금, 사진 작품을 컬렉션 해야 하는 이유’도 열린다.
독립 큐레이터로 올해 20돌 맞아
사진 전공…70여 차례 전시·기획
“누구나 찍는 시대 시장 정체 답답”
개인 소장 27점 ‘사진이 걸린 방’ 전시
“다양한 작가 사진 함께 즐겨”
새달 4일 갤러리 류가헌에서 토크쇼
최연하 큐레이터의 자택 거실에 걸려 있던 ‘사진 컬렉션’. 맨 가운데 액자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향 사진으로, 오상조 작가의 ‘당산나무,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 2008. 3’이다. 갤러리 류가헌 제공
최 큐레이터는 지난해 10월 전남 담양군 다미담예술구에서 열린 ‘담양아트페어’에서 사진 섹션을 맡았다. 사진 갤러리 3곳의 컬렉션과 자신이 뽑은 컬렉션을 모아 40여점을 전시했는데 작가 한 명의 전시에 익숙했던 관객들이 “사진이란 게 이런 거였어?”, “한국에도 이렇게 다양한 작가와 사진이 있구나!”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때 분위기를 전해들은 류가헌과 사진계 안팎에서 “큐레이터의 컬렉션은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역시 의기투합했다.
“갤러리 소장전은 종종 있지만 독립 큐레이터의 컬렉션 사진전은 사실상 처음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사진 감상의 즐거움과 컬렉션의 가치를 나누는 자리라는 의미가 큽니다. 더불어 전시 사진이 팔려 원작 사진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시장 활성화 효과도 있겠죠.” 최 큐레이터에겐 하나의 작은 원칙이 있다. 수입의 10%를 사진 작품을 구매하는 데 쓰는 것이다. 모든 작가의 작품을 살 수는 없는 노릇. 작품 구매의 기준이 뭔지 물었다. 그는 “우선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와 맞아야 한다. 너무 비싸면 못 산다”라며 웃었다. “지금 전시중인 작품 하나하나 나에게 온 인연이 모두 달라요. 이 사진은 내 고향 전경이라서, 이 사진은 평을 쓰다 보니 너무 좋아졌고, 이 사진은 엄마를 떠올리게 해서, 또 작가의 품성이 매혹적이어서… 그렇게 간직하게 됐어요. 투자나 자랑의 가치로 사진을 구매한 게 전혀 아닌 거죠. 일상의 공간에서 늘 사진예술을 함께하면 삶이 조금 더 향기로워지지 않을까요? ”
전시장에 걸린 사진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오상조 작가의 <당산나무,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 2008. 3>이란다 . “저 나무 사진은 진짜 어렵게 찍었을 거예요. 현장에 많이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3월의 나무가 어떤 모습인지…. 거실에 걸려 있는 저 나무를 보면, 나를 보호해주고 , 고향으로 데려가 주고, 어려울 때 힘을 주고, 기도하게 되고, 나무처럼 늠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만약 사진을 살 의향이 있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물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시어를 골라내는 시인들의 시집,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죠. 그들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일단 좋은 전시를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죠. 전시장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왜 끌리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죠. 그 안에 답이 있어요.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품, 의미를 찾으면 좋겠어요.”
최 큐레이터는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오는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전시를 기획해 데뷔시킨 작가도 종종 있다고 했다. 호수나 강 같은 곳에 떠내려오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기생하고 있는 식물들의 사진을 찍은 김정대 작가가 대표적이다. 에코포토아카데미에 그를 소개했고 지난해 담양아트페어에서도 작품을 전시해 호평을 얻었다.
“모든 예술 작품은 독특한 울림을 지니고 있어요. 그 울림을 많이 경험할수록 삶이 즐겁고 내면의 성장도 하게 되지요. 사진도 마찬가지죠. 제가 맛보는 기쁨과 가치를 누구나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