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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비누로 만든 대형캔버스와 바람 서린 조각들

등록 2023-03-27 07:00수정 2023-03-27 08:58

두 여성 중견작가의 색다른 신작전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신미경 작가의 신작 <라지페인팅> 연작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신미경 작가의 신작 <라지페인팅> 연작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기분이 아련해진다.

꽃바람이 불듯 향내가 일렁거리며 코에 와닿는 전시장. 포근하고 환상적인 그림이 다가온다.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포근하고 아련한 색채가 어우러진 수채화 혹은 파스텔화 같은 색면 추상화가 눈을 휘감는데, 눈으로만 보면 누구라도 붓으로 그린 그림으로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아니다. 이 그림은 물감의 판이 아니라 비누의 판이다! 서로 다른 색깔의 비누 엑기스를 녹인 용액을 붓고 굳히고 그 표면을 불꽃을 내는 토치로 가열해가며 치열하게 만든 비누의 난장판인 것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이 개관 20주년 기념전으로 펼쳐놓은 신미경(56) 작가의 개인전(6월10일까지)은 지난 20여년간 비누 덩어리를 들고 비누 조형물을 만들어온 신 작가가 물성 탐구의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하 1층 전시실에 선보인 ‘라지 페인팅 시리즈’는 비누라는 물질에 대한 그의 생각과 회화, 예술의 경계 사이에서 고도의 기법 그 자체로 성찰을 재촉하는 작품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200×160㎝ 크기로 대형 그림틀 속에 100여㎏의 비누를 녹여서 붓고 각기 다른 색들이 서로 어울리게 하는 고단한 조작 과정 자체가 붓으로 색 터치를 하고 농도를 가감하는 창작의 작업과 비견된다.

더욱이 다기한 색채의 결과 느낌을 드러내는 데 머물지 않고 각기 다른 향을 어우러지게 하는 조향사 스타일의 작업까지 끼어들었다. 아이디어만 앞세운 개념적 작업이 대세를 이룬 지금 현대미술계 풍토에서 이처럼 자기가 다루는 물질 재료 자체에 깊이 파고들어 또 다른 사유와 미학의 지평을 끌어올린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비누 회화 신작들은 더욱 소중한 성취로 평가할 만하다.

지상 5, 6층의 박물관 층 공간의 전시 구성도 기존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출함이 보인다. 동서양 고전 조각과 조형물들을 모델로 만든 기존의 비누 조각들이 비바람에 풍화되거나 사람들의 손을 타 닳거나 풍화된 상을 다시 브론즈로 떠서 전시한 작품들이 나왔는데, 코리아나 미술관·박물관의 옛 거울, 서양 조각, 명화 등의 소장품과 뒤섞이면서 시간성을 초월한 조형적 개성미를 표출하고 있다.

문희 작가의 근작 &lt;환희 Ⅴ&gt;.
문희 작가의 근작 <환희 Ⅴ>.

서울 언주로 두남재아트센터 갤러리에서 ‘바람, 동행, 환희… 그리고 쉼’을 주제로 개인전(31일까지)을 차린 문희 작가의 조각전도 조각계의 일반적인 작업 구도와는 전혀 다른 얼개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환희’ ‘인연’ ‘생명’ ‘영원’ 등의 표제어가 붙은 출품작들은 바람과 생명을 주제로 유기적인 형상들이 탄생·변형되는 과정들을 주로 보여주는데 경직되기 쉬운 조각적 언어를 유려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내공이 엿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 전공으로 유학하다 조각으로 작업을 튼 작가는 움트고 비상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나뭇가지가 날개로, 그 날개가 다시 바람의 기운을 받아 변형되는 몽환적 구도의 조형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도판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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