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동안 에든버러 축제에서 프린지페스티벌의 성공을 이끈 윌리엄 버뎃-쿠츠 어셈블리 페스티벌 예술감독.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공.
“프린지엔 자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누구나 원하는 공연을 올릴 수 있죠.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아 흥미롭고 모험적인 자극을 줍니다.”
세계 최대인 에든버러 공연 축제에서 45년 동안 어셈블리 프린지 페스티벌의 성장을 일군 윌리엄 버뎃-쿠츠(68) 예술감독은 ‘프린지 축제 예찬론’을 폈다. 13일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그는 “축제의 바탕인 신뢰와 우정의 정신 덕분에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1947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축제가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이 ‘프린지’(fringe·주변부)에서 자생적으로 공연한 데서 유래했다. 상상력과 실험성을 추구하는 ‘대안 문화축제’로, 특정한 선정 기준 없이 아마추어나 전문 예술단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다. 독특하고 참신한 형식으로 관객과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나중엔 본 행사보다 더욱 창발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축제로 성장했다. 쿠츠 감독은 1979년부터 프린지에 참여했고, 1981년부터 어셈블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프린지의 성장을 주도했다.
어셈블리 프린지 페스티벌은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난타’는 1999년 바로 이 축제에서 관객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무대를 비롯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축제는 2015년부터는 ‘코리아 시즌’을 개설해 해마다 다채로운 한국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점프’란 작품은 에너지가 넘치고 재미도 있어서 관객의 확실한 공감을 끌어냈죠.” 그는 2005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크게 성공한 ‘점프’(jump)를 ‘난타’와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 공연으로 꼽았다. ‘점프’는 택견과 태권도를 소재로 만든 코믹한 작품인데, 대사 없이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이다.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에서 발제를 맡은 그는 “한국 공연예술이 국제적으로 진출하려면 언어 차이를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언어 기반이 아닌 방식의 마술, 춤 같은 공연 형태가 관객에게 접근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158개 예술단체와 156개의 공공 문예회관이 한자리에 모인 해비치 아트마켓에서 발제하는 에든버러 어셈블리 페스티벌 예술감독 윌리엄 버뎃-쿠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공.
국내 158개 예술단체와 156개의 공공 문예회관이 아트마켓 부스를 열어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사고파는’ 해비치아트페스티벌엔 에든버러 페스티벌 외에 캐나타 시나르비엔날레와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페스티벌, 중국 공연극장연맹 등 해외 공연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회장 이승정)·제주특별자치도가 함께 마련해 나흘(6월 12~15) 동안 진행됐다.
쿠츠 감독은 프린지페스티벌을 ‘기회’란 단어로 압축해 표현했다. “프린지에선 어떤 기회가 만들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인생이 달라지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거든요.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협업할 기회를 만날 수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을 받기도 합니다.” 그는 “프린지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수많은 기회를 제공해줬다”고 했다. 그는 이 축제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는 최고훈장을 받았다.
인구 45만 명 남짓한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도시 에든버러는 매년 8월이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공연 관계자와 관객들로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시작돼 연극과 무용,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에든버러 공연 축제는 공식 초청작을 선보이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프린지 페스티벌’로 나뉜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갈 수 있고 잘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꿈의 무대’지만 항공료와 체류비, 극장 대관비 등을 고려하면 쉽게 참가하긴 힘들다.
오는 8월 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올해 에든버러 어셈블리 프린지 페스티벌엔 국내 5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넌버벌(비언어) 마스크 연극 ‘더 메신저’(창작집단 거기가면)와 드림팝 국악 ‘일월당’, 개그 아이돌 ‘코쿤’, 연극 ‘하녀들’, 신체극 ‘헬로, 더 헬:오델로(Hello, the Hell: Othello)’다. 에든버러 축제의 본 행사에 해당하는 ‘인터내셔널 축제’에선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하는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과 첼리스트 한재민이 협연하며,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이 연주한다. 화제에 올랐던 국립창극단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도 공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지난 12일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개막식 포럼.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