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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초가을 청주에 미술꽃 활짝 피었다

등록 2023-09-13 08:00수정 2023-09-18 18:29

청주시립미술관 들머리 계단에 설치된 나현 작가의 설치작품 ‘바벨-이슈타르’.(2023) 노형석 기자
청주시립미술관 들머리 계단에 설치된 나현 작가의 설치작품 ‘바벨-이슈타르’.(2023) 노형석 기자

충북의 거점 청주가 올가을 한국 미술판에서 각별한 눈길을 받고 있다. 외지 사람들에겐 시각문화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현존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14세기 인쇄한 금속활자의 고향으로만 주로 인식됐던 도시였다. 그런데, 지난 1일 청주 문화제조창(옛 연초제조창)에서 개막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개막한 거장 파블로 피카소 도예전을 필두로 건축과 미술이 융합된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등 특색있는 지역 기관들의 전시기획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서울과 다른 지역 미술인,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국내 최초의 개방형 수장고 전시관을 표방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선 이래 정부와 지자체에서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청주시립미술관 등 미술인프라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면서 수도권 못지않은 전시콘텐츠를 갖추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최대의 공예 큰 잔치인 2023청주공예비엔날레는 개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3만을 넘겼다.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를 주제로 57개국 작가들의 작품 3100여점이 아이보리빛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뮤지엄 풍의 전시공간에서 선보이는 중이다. “‘사물’이란 화두로 지금 현재 공예의 미학과 기술을 재성찰하는 것이 요체”라고 강재영 예술감독은 밝혔다.

구슬과 유리를 엮어 거대한 새와 거미의 이미지를 엮은 황란 작가의 ‘비상하는 또 다른 순간’으로 들머리가 시작되는 본전시는 자연재료와 장인적 기술, 인공지능(AI) 활용, 플라스틱 재앙을 극복하려는 바이오플라스틱공예, 순환원리의 업사이클링 등으로 최근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온 공예미술가들의 여러 흐름들을 다섯갈래에 걸쳐 정리해 보여준다.

옹기와 자수 등 전통적 형상에 충실한 작품부터 디지털 스리디(3D) 프린팅이나 에이아이를 활용해 조형적 윤곽을 잡은 작품, 은괴를 두들겨 은그릇으로 만드는 산업+공예 미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옛 연초제조창의 담배생산역사를 사진 자료와 역대 제조 담배 실물들과 함께 보여주는 아카이브 특별전도 볼만하다.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장 들머리에 설치된 황란 작가의 대형 설치작품 ‘비상하는 또 다른 순간’. 노형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이건희기증컬렉션에 포함된 거장 피카소의 명작 도예품 107점을 선보이는 소장품 기획전 ‘피카소 도예’(내년 1월7일까지)를 차렸다. 지난해 과천관에서 90여점이 먼저 다른 인상파 대가들 명화와 선보인 바 있지만, 이번 전시는 1940년대 말부터 지중해 공방에서 작가가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만든 사람 얼굴, 동식물 모티브의 다채로운 도예 작품들이 모두 망라됐다. 회화는 물론 조각, 판화의 영역까지 녹아들어 간 피카소 도예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사선형으로 각기 엇갈리게 배치한 통창 진열장의 시원한 배치와 그의 실제 작업을 담은 기록영화 등이 감상의 흥취를 더해준다.

지난달부터 열린 청주시립미술관 현대미술전 ‘건축, 미술이 되다’(11월19일까지)도 전문가들로부터 인상적인 기획이라고 호평을 받는 화제의 전시다. 15명의 건축가와 조형 예술가들이 미술과 건축의 융합을 모토로 빚어낸 각양각색의 입체 조형물과 미디어아트, 설치 작품 30여점이 나왔다.

2개층의 좁은 전시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미술관 건물 공간을 절묘한 설치 전시장으로 변환시킨 공간 큐레이팅이 돋보인다. 진입부 계단에 고대 바빌론의 바벨탑을 상상하면서 청주 지역의 귀화식물(외국에서 들어와 토착화된 식물)들로 수놓아진 탑 조형물을 설치하고 탑 중간 공간에 바빌론 수호신 이슈타르의 풍선 사자상을 배치한 나현 작가의 가변설치 작품이 이런 공간 구성의 묘미를 대표한다.

누에 6500마리가 짠 실크 파빌리온을 내놓은 네리 옥스만의 작품이나 전시공간의 벽면이 움직이는 빛과 만나 빚어내는 환상적 미감을 드러낸 폴씨의 미디어아트적 공간, 집 공간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증식하는 5개의 방을 만든 홍범 작가의 작품 등 상당수 개별 작품들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고 기획의 틀거지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국립청주박물관은 이건희기증컬렉션 순회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을 열면서 그동안 컬렉션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크고 작은 화문석 등의 옛 석물 기증품 100여점을 모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최근 채용신의 ‘화조영모도’로 교체) 등의 걸작들과 함께 전시장에 진열해 눈길을 끌었다.

청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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