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장에 내걸린 자신의 그림 ‘몸에 풀 넝쿨 이어보기’ (2019~2020)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임동식 작가.
한국 미술판에서 원로의 연령에 이른 임동식(78) 작가는 어떤 사조나 흐름에도 쉽게 분류해 넣을 수 없는 독특한 자리를 오래전부터 차지해왔다. 그는 60여년 간의 예술 여정에서 퍼포먼스, 공동체 미술, 회화 등 다기한 형식으로 자연을 탐구하고 성찰했으며, 이를 토대로 삶에 대해 발언해 왔다. 자연의 숲과 강 등을 무대로 직접 몸을 던지거나 천을 날리는 행위예술을 하는 이른바 자연미술 운동을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야투’라는 예술가 동인을 세운 주역이었고 자신 또한 직접 공주의 원골마을에 내려가 농사가 곧 예술작업이라는 모토 아래 돋보이는 농촌 공동체미술 활동의 전형을 만든 이 또한 그였다.
하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그의 예술 이력에서 최근 가장 주목되는 건 자연미술의 연장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독창적인 리얼리즘 회화 작업들이다. 홍익대 회화과 64학번이지만 1974년 학교를 늦깎이로 졸업한 뒤에는 자연미술의 퍼포먼스에 심취해 1990년대 초반부터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지난 20여년 간 신구작들을 보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여느 작가와 전혀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그릴 풍경이나 정물을 스스로 정해 사생하지 않는다. 산과 강을 돌면서 나무뿌리와 칡, 버섯을 캔 평생지기 우평남씨가 눈길 주고 그리라는 곳을 일러주면 거기를 그린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자기가 자연 미술 행위를 벌인 나라 안 곳곳의 산야와 바다, 강 등의 작업 공간과 그 시절 행위 자체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 퍼포먼스의 장면들을 계속 덧붙이고 개작하면서 무수히 다시 그린다.
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장에 내걸린 자신의 그림 ‘몸에 풀 넝쿨 이어보기’(2019~2020)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임동식 작가.
과거의 세월에 대한 기억 위에 그리는 기억이 축적되는 그림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증식하는데, 이는 조선후기 선비화가들이 과거 금강산 등의 산하 명승을 다녀온 기억들에 주관적 해석을 덧붙여 그린 진경산수의 화풍과도 일정 정도 맥락이 통한다.
1일부터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 임동식’은 지난 20여년 간 그가 작업해온 회화 40여점, 드로잉 100여점을 통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임동식 회화의 성취를 보여준다. 과거 자연을 상대로 진행한 야외 작업의 순간들, 예술친구 우평남과의 교유와 자신이 거처했던 공주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담은 출품작들은 자연 현장에 중심을 두고 수행해온 예술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그 지평을 넓히는 매체로서 회화의 독보적인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임동식은 197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한국 미술의 정체성 탐색의 일환으로 같은 해 ‘한국미술청년작가회’ 창립 멤버로 들어갔다. 1975년 충남 안면도 꽃지에서 열린 ‘제1회 야외작품을 위한 캠핑’에서 해변에 둥근 알 형상의 석고 조각 서른개를 놓는 작업에서 자연과 합일되는 무한의 자유를 느낀 뒤 자연미술로 평생의 예술혼을 투여하게 된다.
그는 이후 자연 현장에서의 퍼포먼스를 거듭하면서 1980년 금강현대미술제를 개최하고 1981년 ‘야투(野投): 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설립하는 등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현장 예술을 지향해왔다. 전시장에는 전시 제목과 동명인 작품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1993-2020)을 비롯해서 ‘예술과 마을’, ‘친구가 권유한 풍경’, ‘비단장사 왕서방’ 등의 주요 회화 연작들이 나왔다.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1층에 나온 ‘물보기 나보기’(2019~2020). 1980년대 금강변에서 행한 청년 작가 시절의 자연미술 퍼포먼스를 기억 속에서 재현하고 상상을 덧붙여 그렸다.
출품작들은 한국 실험미술의 중요한 갈래인 자연 미술의 역사적 기록이자 주관적인 작가의 기억을 담은 작업일 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을 일상으로 확장해온 그의 미술가적 행보가 향하는 지향을 드러내는 것들이기도 하다. 특히 3전시장 입구에는 2000년대 이후 그의 도반이 된 우평남씨의 소박한 작업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임 작가가 친구와의 교유를 바탕으로 리얼리즘 회화를 통해 자연 미술을 추구해 나가는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에게 회화는 자연무대 퍼포먼스의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회화로서 지속하고 되풀이되는 통시적인 작업이다. 번들거리는 유화물감을 짙게 칠하지 않고 성기게 칠해 입자성을 강화하면서 심리적 파장을 던지는 것, 그럼으로써 현장의 역동성과 작가 내면의 심상을 함께 전함으로써 기존 회화의 평면적 개념을 초월한 자연과 인간의 융화적 형식을 만들어낸다.
불안감이 엄습하는 시대에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성격의 그림들이다. 10월1일까지.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