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 도자기판 화폭 위에 그린 우영숙 작가의 국화꽃 그림. 노형석 기자
작가는 2년 동안 흙장난, 불장난, 물장난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자신의 신작들을 소개한다. 흙을 물에 개어 빚고 굽어 만들어낸 갖가지 모양의 판 덩어리들이 화폭이 되었고, 그 위에 선조들이 좋아했던 갖가지 민화의 이미지들을 그리고 칠했다. 나무 위에 앉은 까치와 수작하는 호랑이, 옛 임금의 옥좌 뒤에 그려졌던 일월오봉도, 화분에 정갈하게 꽂힌 국화, 책꽂이 그림인 책가도들이 등장한다. 소담한 모란꽃송이와 이빨을 드러낸 채 웅크린 귀여운 호랑이는 아예 화폭이 꽃모양과 호랑이 모양이 되기도 했다.
이빨 드러낸 채 웅크린 호랑이의 상. 노형석 기자
분청사기 그릇 위에 그려넣은 모란 이미지들. 노형석 기자
지금 서울 돈화문길 아래 와룡동 나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중견 민화작가 우영숙씨의 개인전 ‘뿌리들(Roots)’(14일까지)은 일일이 빚고 구운 분청사기 화폭에 조선 민화의 정감 넘치는 세계를 펼쳐놓는다. 작가는 종이에 그리는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분청흙으로 초벌 그림판을 만들었고, 백톳물에 덤벙 빠뜨리거나 귀얄붓으로 백토를 칠한 뒤 다채로운 민화의 도상들을 철화·동화·청화안료로 그려 넣었다. 은은하고 소박한 작품들이지만, 갖가지 모양과 도상을 한 도판화 작품들의 세부를 살펴보면 작가적 열정과 작업방식의 치열함이 숯불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나에게서 ‘뿌리’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힘을 의미한다. 내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풀, 꽃, 나무는 뿌리에서 이루어진다. 뿌리는 땅속에 깊이 자리하여 모든 에너지를 삼킨 후, 천천히 골고루 나누어주는 역할을 마다치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위해 흐름을 거스르는 삶의 기원을 담아 태어났지만 종국에는 뿌리가 삼키는 에너지인 ‘뿌리(흙)’로 돌아간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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