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고택에서 촬영 준비중인 민병헌 작가. 갤러리구조 제공
바늘 없이 낚시하는 강태공처럼 사진을 찍는다. 필름에 담지만, 눈에만 담기도 한다. 수묵화 같은 회색빛 풍경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민병헌씨는 지난 3년여간 영호남 일대의 남도를 떠돌면서 무심무념의 사진기행을 벌였다.
비 오는 날 저녁 전남 곡성 섬진강변으로 차를 몰았다가 안개 무성한 풍광을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차 안에서 밤을 새웠지만, 정작 날이 새자 건질 사진이 없어 눈에만 풍광을 담고 떠났다. 꽃피는 장관으로 유명한 장흥 배롱나무숲 군락지에는 꽃이 다 떨어진 뒤 찾아갔다. 숲 근처의 작은 연못만 뚫어지게 보고 찍다가 왔다. 경남 창녕 우포늪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가지 않는 연못 뒤쪽 언덕 험로를 돌아 구석 배기의 비경을 살폈다.
작가가 최근 출간한 새 사진집 ‘남녘유람’은 대개 이런 열린 마음을 반영해 만들어진 작품 모음이다. 지난 2014년 전북 군산에 정착한 뒤 널널한 마음으로 주유했던 남도 지역 기행의 성과들을 주로 모아 보여주는 이 사진집의 출간을 기념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 디자인 전시공간 빌라 15에서 수록작 일부를 모은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빛이 은은하게 얼비치는 남도의 산 구릉과 눈 덮인 표면 위에 선화처럼 늘어진 잔가지들, 힘차게 뻗어올라간 겨울나무들의 클로즈업된 모습, 화사하게 잎새를 늘어뜨린 활엽수들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 등이 특유의 부연 화면 속에서 나타난다.
출간기념전 전시장에 나온 수록작 중 일부. 노형석 기자
작가는 “남녘 연작은 군산에 머물면서 사람들과 편안하게 관계 맺고 여유롭게 돌아다녔던 그 마음 자체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17일까지. 서울 성수동 구조갤러리에서도 그의 지난 30여년 사진 연작들 가운데 수작들을 일부 간추린 모음 전시인 ‘戒(계)’가 19일까지 열리는 중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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