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를 여는 세계인의 공통 의례로 자리잡은 최고의 ‘히트 문화상품’이 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다. 1939년 이래로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지구촌을 흥겨운 춤곡 선율로 물들인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서 깊은 공연장 무지크페어아인에서 오전 11시15분(현지시각)부터 150분 동안 이어진다. 전세계 90여 나라가 이를 라이브로 중계한다.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의 기획으로 시작된 어두운 역사를 지녔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이번에 포디움(지휘대)에 오르는 지휘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64). 2019년에 이어 두번째다.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 필 신년음악회를 누가 지휘할지는 음악팬들의 관심사다. 이 무대에 1980년대 이후 가장 자주 오른 지휘자는 로린 마젤(1930~2014)인데, 11차례였다. 리카르도 무티(82)가 6차례, 주빈 메타(87)가 5차례로 뒤를 이었다. 다니엘 바렌보임(81)과 프란츠 벨저뫼스트(63), 마리스 얀손스(1943~2019)가 각각 3차례였다. 동양인으론 유일하게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88)가 2002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프로그램은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1·2세의 왈츠와 폴카 등 춤곡 중심이다. 이 무대엔 전통으로 확립된 관행이 있다. 후반 앙코르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지휘자와 단원들은 연주를 멈추고 신년 인사를 건넨다. 언제나 마지막 앙코르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끝난다는 점도 전통으로 굳었다.
국내에서도 2013년부터 멀티플렉스극장 메가박스에서 생중계하고 있다. 시차와 위성 중계에 따른 지연 현상에 따라 저녁 7시부터다. 일반 영화 관람료보다 비싸지만,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선 새해를 맞는 이벤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2월 초순까지 다채로운 신년음악회가 펼쳐진다. 서울시향은 5일과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각각 신년음악회를 연다. 5일 공연엔 성시연(48) 지휘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8)가 협연한다. 대원문화재단이 주관하는 6일 공연은 협연자가 피아니스트 손열음(37)으로 바뀐다. 경기필하모닉은 12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신년음악회를 여는데, 새로 상임지휘자를 맡은 김선욱(35) 예술감독 취임 기념을 겸한다. 협연자로 피아니스트 백건우(77)가 나선다.
국립오페라단이 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여는 신년음악회는 2024년에 공연할 오페라들의 주요 아리아를 미리 선보인다.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바그너의 ‘탄호이저’ 등이다. 6일 공연은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콘서트로 꾸민다. 오페라 ‘라 보엠’과 ‘나비 부인’, ‘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들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도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신년음악회를 연다. 정치용 지휘로 황병기 작곡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과 타악 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 등을 들려준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