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신년음악회 등 4차례 공연
“우주 유튜브 보며 무대 울렁증 극복”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 피아니스트 김준형(26)이 무대에 올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2번을 연주했다. 금호아트홀이 12번째로 선정한 ‘올해 상주음악가’다. 1년 동안 그가 직접 기획한 연주회를 4차례 선보인다.
그는 전문 연주자로는 비교적 늦은 초등학교 5학년에야 첫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 전엔 누나(김경민)의 레슨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피아노를 접했다. 첫 레슨 이후 4년 만에 금호아트홀 영재로 데뷔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2021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듬해에 독일 에이아르디(ARD) 콩쿠르에서 준우승했다.
그는 올해 4차례 연주회를 관통하는 주제로 ‘엽편소설’을 골랐다. 나뭇잎 위에 쓸 정도로 짧은 소설이란 뜻이다. “짧은 글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응축한 엽편소설처럼 60분 남짓한 짧은 공연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어요.” 그는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곡가 6명을 뽑았다”고 말했다. 바흐와 베토벤, 슈만, 리스트, 브람스, 드뷔시다. 오는 11일 신년 음악회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5월에'(5월) '풍경산책'(8월), '종을 향하여'(12월)란 소제목을 붙였다.
“콩쿠르 심사위원에게 ‘너드(nerd) 같다’는 평을 들은 적 있는데 저와 잘 맞는 말 같더군요.” 그는 자신을 “덕후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너드란 말엔 지질하다는 뜻도 있고, 모범생 같다는 뜻도 있어서 욕인지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원래 무대에 오르면 긴장하는 편이었는데, 지난해부터 무대 울렁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비결은 우주를 소재로 한 유튜브 시청. “우주 유튜브를 보면서 광활한 우주에 비해 한없이 작은 이 무대에서 뭐하러 긴장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우주 유튜브를 집중해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무대 위 긴장감이 없어졌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 독일로 유학해 10년 넘게 뮌헨에서 살고 있다. 피아노 전공을 마치고 다시 현대음악을 전공하며 대학을 두 번 다니고 있는 특이한 경우다. 그는 “혼자 연습하고 무대에도 대부분 혼자 오르는 피아니스트는 정신적으로 피폐하거나 예민할 때가 많다”며 “현대음악 음악가들과도 협업하며 시야를 넓히고 소통법도 배운다”고 말했다.
금호아트홀은 2013년 국내 공연장 최초로 ‘상주음악가’ 제도를 시작했다. 30살 이하 클래식 기악 연주자가 대상이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문태국 등 세계적 연주자로 성장한 연주자 11명이 지금껏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를 거쳤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