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머리, 어쿠스틱 기타, 보컬 하모니로 상징되는 목가적 자연주의, 순수 낭만파 시절 4인조 ‘오리지널 해바라기’의 첫 앨범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47)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전원적 순수주의가 침윤된 건전 포크송의 초상화
세월이 흐를수록 현재가 과거로 되는 속도는 가속화된다. 한 예로 지난회의 화두였던 여름 노래로 시작해보자. 음악 청취 매체 및 관습의 가속적 변화만큼 여름 바캉스 풍경도 변화한 지금, 해변가에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통기타 반주에 손뼉 치며 입을 모아 노래 부르는 1970년대식 ‘낭만적’ 풍경은 영화 같은 데서나, 그것도 때로는 희화적인 추억 모드로 스케치되지 않던가. 그러니 대표적인 여름 노래로 쿨의 ‘해변의 여인,’ 디제이디오씨의 ‘여름 이야기’ 등을 선곡한다면 벌써 10년 전 이야기라며 구식이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그래도 키보이스가 부른 ‘해변으로 가요’는 한국판 ‘서핀 유에스에이’로써 한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그룹 사운드 버전 여름 노래로 남았다.
그렇다면 포크 버전의 썸머 캠프 송 무엇이 있을까? 여름을 ‘젊음의 계절’ ‘사랑의 계절’로 공식화시킨 ‘여름’이 있다. 물론 그때 애창되던 ‘사랑의 여름’의 한국판 노래는 지극히도 건전했다. 때묻지 않은 순수를,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던 아마추어리즘 포크 송의 한 초상화라고나 할까. 이 노래는 한양대학교 노래모임 징검다리(1기 이성용, 이교일, 이후 80년대에 사회자로 명성을 날린 왕영은, 현재 재독 재즈 보컬인 정금화의 혼성 4인조)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졌다. 지난회에 살펴본 1978년 동양방송(TBC) 해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기성 작곡가’의 곡이었다. 때문에 그룹 사운드들의 많은 히트 창작곡이 분기했던 해변가요제 첫 대회에서 아마추어 창작곡이 아닌 ‘직업적 작곡가’의 곡이 출전, 수상한 점에 대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징검다리는 이 노래를 어떻게 ‘입수’했을까?
이 곡의 작곡가는 다름 아니라 이정선이다. 그가 한양대의 교내 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후 여러 면에서 징검다리의 음악적 스승이 되었다는 후문. 이후 해변가요제에서 이름을 바꾼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1980년)에서도 징검다리(2기)가 이주호 작곡의 ‘님에게’로 출전, 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정선과, 그가 이끌던 포크 노래모임 해바라기의 음악적 영향력이 지대했다. 징검다리뿐이겠는가. 이정선 하면 무엇보다도 ‘이정선 기타교실’로 대변되는 어쿠스틱 기타의 불후의 교주이며, 해바라기로 상징되는 한국 포크의 대부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아마추어 포크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훗날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씬에 지대한 공헌자이기도 하다.
이때 이정선이 수장으로 있던 일명 ‘오리지널 해바라기’는 잘 알려져 있듯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 해바라기 홀에서 열리던 노래모임이 ‘4인조 혼성 그룹’으로 전화된 형태였다. 이들의 대표곡 ‘뭉게구름’ ‘구름 들꽃 돌 연인’ 등은 전원적 목가풍 서정주의로 대변되는 ‘싱얼롱’ 포크송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그들의 다층적 화성에서 어떤 이들은 재즈 보컬 그룹 맨해튼 트랜스퍼까지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인위적 전기 파장 대신 어쿠스틱 기타에 인간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다성(多聲) 화음을 통해 뮤지션과 청자, 발신자와 수신자가 교감했다. 소박하고 건전했으며 또한 중성적이었던 순수 자연주의자들은 말하자면 명동을 중심으로 발흥했던 1970년대 포크 공동체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공식적으로 이들은 1977년, 78년 두 장의 앨범을 내고 흩어졌다.
그 이후 포크의 행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해바라기 멤버들이었던 이정선이나 한영애가 ‘신촌블루스’로 대표되는, 원초적이고 진한 블루스 음악으로 항해했던 반면, 1980년대 초 이주호는 ‘해바라기’ (일명 ‘이주호+알파의 해바라기’)라는 이름을, 새로운 멤버 유익종과 함께 만든 2인조 남성 듀오 포맷을 통해 부활(?)시켰다.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이 전령사는 1970년대 포크의 계승자로 위치지워졌고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이에요’ ‘내 마음의 보석상자’ ‘사랑으로’ 등 히트곡을 남기며 1980년대 대표적인 듀오로 자리잡았다. ‘오리지널 해바라기’의 전원적 자연주의 대신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만이 생존한 말랑말랑한 발라드 연가는 1970년대 포크가 이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물론 1970년대 포크 공동체의 또 다른 잔영은 1980년대 중반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린 씬을 통해서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