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디브이디로 복각되어 리메이크 음반과 묶음으로 발매된 〈공장의 불빛〉.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54) 전설적 노래굿, 혁신적 콜라주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청년문화의 우상’ 송창식과 이장희가 1970년대 말 록 밴드와 연관을 맺으면서 각각 전면과 배후에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을 때, 단 한 장의 독집으로 전설이 된 김민기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정권에 의해 위험천만한 인물로 낙인찍힌 김민기는 공식 음악계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77년 군 제대 후 6년여 동안 노동자로, 농부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음악을 청산한 건 아니었다. 이장희처럼 배후에서, 아니 그보다 더 은밀하게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김민기의 작품이 정식으로 발표된 통로는 기왕 그의 ‘대중적인 입’ 구실을 한 양희은을 통해서였다. 그가 군 복무 중일 때 양희은의 목소리로 ‘주여 이제는 여기에’가 공개되었다. 김민기의 걸작 중 하나인 이 곡은 김지하의 희곡을 연극으로 만든 〈금관의 예수〉(1973)의 주제가였는데, 양희은 버전들이나 뒤에 발표된 남궁옥분 버전(‘금관의 예수’, 1981) 모두 사전심의로 인해 가사가 해괴하게 수정되고 말았다. 그 중 압권은 배경이 ‘가난과 곤욕의 이 거리’에서 ‘북녘 땅’으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란 가사가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로 둔갑한 것이다. 가히 ‘촌철살인’이라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김민기의 새 노래들이 집단적으로 담긴 음반으로는 양희은의 1979년 독집이 있다. 타이틀곡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원제: 상록수)은 ‘아침이슬’을 잇는 대중적 송가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곡으로, 20여 년 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 때 공익광고 캠페인 송으로 무던히도 흘러나오고 2002년 대선 때 어느 후보의 광고에 쓰여 지금도 잘 알려진 곡이다. 그밖에 군가풍의 ‘늙은 군인의 노래’, 국악 어법의 ‘밤뱃놀이’, 동요적인 ‘식구생각’ 등이 담겨 있다.
특히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80년대에 각각 노동자, 농민, 교사를 화자로 한 노래로 바뀌며 널리 구전된 명곡이다. 음반 뒤표지에는 창작자의 이름이 가명으로 적혀 있었지만, 김민기의 곡들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지독한 가뭄 끝의 단비처럼 환영받았음은 물론이다. 음반 자체는 가사 검열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판본을 바꾸며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지만.
그런데 이 시기 김민기의 진정한 문제작은 그가 직접 제작한 혁명적 불법 음반 〈공장의 불빛〉이었다. 경제성장의 그늘, 노동 현실과 노조 탄압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 노래굿 사운드트랙은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노래운동과 민중가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앨범이 혁명적이었던 또다른 이유는 아예 사전검열을 거부하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독자적으로 배급하면서 민중가요 음반의 미디어, 제작, 배급의 알파와 오메가를 선구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공장의 불빛〉은 1978년 송창식의 원효로 스튜디오에서 조원익, 배수연, 이호준 등 일급 세션맨을 초빙해 반주를 녹음하고 이화여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서울대 ‘메아리’, 이화여대 ‘한소리’, 경동교회 ‘빛소리’ 등이 동참해 보컬 녹음을 하고 최종 믹싱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된, 온몸을 건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는 포크 스타일뿐 아니라 구전가요, 찬송가, 국악, 블루스, 로큰롤 등 다양한 형식을 한데 실험한 혁신적인 것이었다. 비록 음질은 조악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와 매력을 전염시키는 데 걸림돌은 아니었다.
〈공장의 불빛〉은 이제 김민기를 더 이상 ‘한국적 모던 포크의 기수’라는 틀에 한정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또한 신비롭게 포장된 저항음악의 투사로만 가둘 수 없는 다기한 음악세계를 지향하는 아티스트임을 알려주었다.
이를 반영하듯 이후 그는 노래굿(흔한 말로 뮤지컬) 창작자 겸 연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사이 그는 〈공장의 불빛〉의 인연으로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 1〉(1984)을 만드는 데 관여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자. 노찾사 1집이 이장희가 설립한 광화문 랩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는 사실은 미리 기억해두고.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