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들의 첫 음반 〈마음 약해서〉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59) ♩ 디스코의 열기 속으로
1970년대 중·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토요일 밤의 열기’는 바다 건너 이곳으로도 후끈하게 불어 닥쳤다. ‘디스코’(좀더 정확히 말하면 ‘유로 디스코’)의 물결은, 이전 시기를 지배했던 이른바 ‘고고’를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춤추는 곳 역시 변화해서, ‘고고 클럽’은 ‘디스코텍’이라는 상호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고고 클럽을 지배하던 사이키델릭 록이나 하드록 스타일 역시 인공적인 비트와 원초적인 리듬에 자리를 내주었다. 차갑고도 인위적인 듯한 정박의 리듬을 배경으로 흔들고 비벼대는 달뜬 플로어 앞에서는 격변의 정치 상황도 비켜갈 수 없었다.
이 땅에서 디스코가 허공에 흩날리는 손가락 찌르기 춤으로 요약된 것처럼, 나이트 클럽의 레퍼토리 역시 다분히 한정적이었다. 이럽션의 ‘원 웨이 티켓’, 보니 엠의 ‘리버스 오브 바빌론’, 빌리지 피플의 ‘와이엠시에이’, 징기스 칸의 ‘징기스 칸’, 둘리스의 ‘원티드’, 놀런스의 ‘섹시 뮤직’, 아라베스크의 ‘헬로, 미스터 몽키’ 등이 1980년대 초반경까지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방미가 부른) ‘날 보러와요’, (조경수가 부른) ‘와이엠시에이’나 ‘징기스 칸’ 등처럼 이들은 한국어 번안곡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 유행 앞에서 그룹 사운드든 솔로 가수든 예외랄 게 있었을까. 이합집산을 겪으며 살아남은 그룹 사운드의 생존자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밤무대의 슈퍼 그룹’이었던 ‘검은 나비’나 ‘히 식스’는 디스코의 열기를 반영하는 명시적인 앨범 제목을 내걸고 각각 〈보니 엠 힛트 리바이블〉(1979)과 〈가을에 떠난 사람/ 로라 디스코〉(1980)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떠오르는 새로운 얼굴들은 따로 있었다. ‘연안 부두’의 김 트리오(김대환, 최이철, 조용필의 김 트리오와는 다른 그룹이다)와 ‘마음 약해서’의 와일드 캐츠(일명 들고양이들). 이 두 그룹은 많은 점에서 비슷했다. 우선 모두 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경우로, 김 트리오는 미국에서, 와일드 캐츠는 홍콩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각각 활동한 바 있다. 또한 아바, 둘리스, 보니 엠 등을 전범 삼은 혼성 편성의 그룹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이때 이러한 여성 가수를 앞세운 혼성 편성의 그룹들은 이 시기 전후에도 ‘나미와 머슴아들’, ‘조한옥과 은날개’, ‘이종식과 사랑의 샘’ 등 줄을 이어 명멸했다. 여성 가수를 내세웠던 ‘검은 나비’의 멤버들은 1980년대에는 아예 ‘김혜정과 검은 장미’로 개명해 활동하기도 했다(이런 여성 보컬리스트를 앞세운 혼성 그룹 사운드의 당시 유행에 대해서는 지난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런데 많은 한국 음악들이 그러했듯, 이 음악들에도 이른바 ‘뽕끼’가 가미된 사운드가 녹아 있었다. 가령 ‘마음 약해서’는 기왕에 다른 가수가 부른 바 있는, 트로트 작곡가 김영광의 곡이다. 이런 음악의 배후에는 ‘안타 프로덕션’과 ‘오리엔트 프로덕션’이 있었다. (앞의 연재들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있는) 안치행과 나현구가 각각 선두지휘하던 곳이다. 이곳을 통해 록이 트로트로 퇴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런 음악들에는 이전 시기와 다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신시사이저가 뿜어내는 차갑고도 화려한 조미료와 함께, 좀더 댄서블하고 모던한 팝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는 여정에 있었으므로.
이런 사운드들이 나이트 클럽의 음악으로 등극한 데에는 또다른 외적 요인이 있었다.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서울의 강남 개발 붐과 맞물렸던 것. 때문에 더는 수지가 맞지 않는 명동의 생음악 살롱, 고고 클럽 등은 문을 닫거나, 카바레 혹은 성인용 업소 등으로 탈바꿈해 강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성인용 음악으로 바뀐 음악은 다른 식으로 재생되었다. 즉, 라이브로 연주되는 곳이 아닌, 음반을 틀어주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대 앞에 섰던 유수의 밴드들은 서서히 과거의 뒤안길로 퇴장하거나, 그나마 생존한 그룹들은 변두리나 지방, 혹은 행사장 등 ‘주변화’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디제이가 ‘밤무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리듬 속의 열기는 그렇게 한 시대를 닫고 또 한 시대를 열게 된다.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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