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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캠퍼스 밖 성공신화 이룬 캠퍼스 그룹

등록 2006-08-06 20:17수정 2006-08-07 18:47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실린 송골매의 2집 앨범 〈송골매 Ⅱ〉.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실린 송골매의 2집 앨범 〈송골매 Ⅱ〉.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61) 송골매
1982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그 사람이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때 대학교 캠퍼스에서 방황하던 사람이라면 ‘님을 위한 행진곡’이 기억나겠지만, 그게 만인의 보편적 경험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TV 앞에 죽치고 있거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이라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는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조용필의 음악에 대해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고집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이 기억은 더욱 각별할 것이다.

송골매의 두 번째 정규 앨범에 실린 이 곡은 그해 내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그 ‘여기저기’ 가운데 가장 어울리는 장소는 당대를 풍미한 ‘디스코장’이나 ‘롤라장’이었을 텐데, 이는 인상적인 기타 인트로에 이은 펑키한 리듬 때문일 테고, 이 매력은 ‘웃찾사’의 ‘몽키 브라더스’라는 코너의 배경음까지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후렴구가 끝난 뒤 베이스 기타가 씽코페이션(당김음)을 섞어 한마디를 능숙하게 연주한 뒤 한 박자 쉬고 보컬(구창모)이 ‘움’이라고 뱉는 남성적인 너무나도 남성적인 소리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몇 안 되는 인상적 순간을 만들어 냈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이들은 ‘아이돌’의 지위까지도 꿰찰 수 있었고, 이는 1970년대 초 ‘히 식스’에 이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송골매는 항공대학교 캠퍼스 그룹 사운드인 런웨이(활주로)와 홍익대학교 그룹 사운드인 블랙 테트라(열대어)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탄생한 일종의 ‘슈퍼그룹’이었다. 그리고 이 한 곡을 통해 송골매는 캠퍼스 그룹의 ‘캠퍼스 이후’의 성공담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보컬과 기타를 맡은 구창모와 배철수는 상이한 개성과 음색으로 송골매의 양날개 역할을 수행했고, 김정선의 능숙하면서 날카로운 톤의 기타 사운드는 예리한 발톱 역할을 했다. 키보드를 맡은 이봉환은 그 자체로 그림을 제공했고, 오승동(드럼)과 김상복(베이스)은 뒷전에서 조수의 역할을 묵묵히 그러나 충실하게 수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멤버가 조금 많아 보이지만, 이제 막 컬러 TV방송이 시작되고 14인치 텔레비전(‘삼성 이코노 TV'를 기억하는가?)이 대중화된 시대에 6인조 그룹은 손쉽게 화면을 꽉 채우는 효과를 발휘했다 (<젊음의 행진>과 <영 일레븐>을 기억하는가).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필살 히트가 강력하기는 했지만, 이 앨범에는 ‘모두 다 사랑하리’(노래: 구창모)와 ‘그대는 나는’(노래: 배철수)이라는 또 하나의 히트곡들을 통해 ‘록 발라드’라는 새로운 경향도 예시하고 있었다. 특히 김정선이 작사하고 김수철이 작곡한 ‘모두 다 사랑하리’는 동경가요제(1983년 3월)에 출전하여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시대의 업무에도 동참했다. 이후 이들은 매년 1종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꾸준한 활동을 보였는데, 이듬해 나온 3집은 ‘처음 본 순간’, ‘빗물’, ‘아가에게’, ‘한줄기 빛’ 등을 통해 특유의 ‘젊음의 행진’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4집(1984)을 발표한 뒤 구창모가 솔로로 독립한 것은 한국의 음악산업이 록 밴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 뒤 배철수라는 원톱을 주축으로 또 한번의 구조조정을 통해 프로페셔널 밴드로 거듭나려는 송골매의 두 번째 비상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5집 <하늘 나라 우리님>(1985)으로 송골매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계속 등장할 수 있었지만, 아마도 그것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새가 되어 가리’가 실린 7집 앨범은 한국 록 음반의 열성수집가들에게는 명반으로 취급받고 있는지 몰라도, 대중의 반응은 변덕스러웠다. 아니 송골매의 음악이 변덕스럽게 변해 갔다. 무엇보다도 1985년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나 한국 사회 전반이 ‘캠퍼스 그룹의 순수한 열기’로 지탱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은 서서히 지쳐 갔고 지친 상태에서 창의성이 발휘되기는 힘든 법이다. “매일 밤 나이트클럽에 출연했고 어떨 때는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는 멤버들의 후일담은 송골매를 티브이와 음반으로 접했던 사람에게는 다소 의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장난으로 연주하자’는 심정으로 녹음한 듯한 ‘모여라’를 마지막으로 송골매의 비상이 끝난 것은 좋은 결말이었다. ‘모여라’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 다시 모이겠다’는 이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신현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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