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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촌놈 연기에 서울관객도 배꼽 쥐데유

등록 2006-08-13 19:49수정 2006-08-13 19:52

“지방문화 푸대접 뒤집겠다” 상경 공연
평생 염쟁이의 마지막 주검 염하던 날 다뤄
관객과 경계 허문 ‘마당극 유머’ 인기비결
7개월째 대학로 장기흥행 ‘염쟁이 유씨’의 유순웅

‘청주 촌놈’ 유순웅(43)씨의 모노드라마 〈염쟁이 유씨〉(김인경 작, 위성신 연출)가 대학로를 뒤흔들고 있다. “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상경했는데, 벌써 7개월째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평일에도 객석이 꽉 차고, 연극을 아홉 번이나 봤다는 ‘염쟁이 폐인’이 생길 정도다.

“서울 문화만 문화인가요? 촌놈들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역 문화가 살아야 우리 문화가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것 아닙니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 공연을 강행한 것은 일종의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방 문화 푸대접 현상’을 뒤집어 보겠다는 결기가 돋친 것. 2004년 청주 초연 이후 1년 반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제일 큰 시장인 서울을 굳이 피해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결심을 재촉했다.

〈염쟁이 유씨〉는 평생 주검 닦는 일을 하며 살아온 주인공이 염쟁이 일을 그만두겠다며 마지막 염을 하는 날의 이야기다. 시신이 오그라들지 않도록 손과 발을 주물러주는 ‘수시’, 시신의 입안에 구슬이나 엽전, 쌀을 넣어주는 ‘반함’ 등 염하는 과정을 씨줄로 하고, 대대로 염쟁이 일을 해온 집안의 가족사를 날줄로 엮어넣는다.

인기의 비결은 유머와 소통이다. 유씨는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대화를 한다. 관객들에게 소주 한 잔과 멸치 한 마리를 권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연기를 시키기도 한다. 수시로 객석의 조명이 밝아진다.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마당극의 전통이 대학로 젊은 관객들의 핏 속에도 흐르는 것일까? 관객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겁게 참여한다.

“다리 끊어져 죽어, 백화점 무너져 죽어, 배 뒤집혀 떼로 죽어, 장가 못 가 죽고, 대학 못 가 죽지. 성적 떨어져 죽고, 주식 떨어져 죽지, 내 나라 군인헌테 몽둥이 맞아 죽지. 내 땅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지. 그뿐여? 십억씩 백억씩 낼름낼름 받아 처먹다가 뻥 배 터져 죽은 놈이 있는가 하면, 그거 쳐다보다가 복장 터져 죽는 놈이 있어.” 판소리 장단의 사설과,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즉흥연기가 배꼽을 쥐게 하고, 대미를 장식하는 아들 이야기는 젊은 관객들의 눈가를 젖게 한다. 연극이 끝났을 때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젊은 희곡작가 김인경이 쓴 〈염쟁이 유씨〉의 대본에는 ‘연극쟁이 유순웅을 위한 일인극’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유씨만을 위한 맞춤 연극인 것이다. 유씨는 청주의 민족극 단체인 예술공장 두레의 상임연출이면서, 민예총 충북지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대학(한신대 기독교교육과) 때 탈춤반 활동을 하면서 마당극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서양식 연극이 아닌) 마당극을 한다는 것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며 “그렇지만 우리는 순수하게 공연해서 번 돈으로 단원들에게 4대보험과 정액의 월급을 보장하고 있고, 1천평짜리 연습실과 마당(극장), 숙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중운동의 쇠퇴와 함께 위기를 맞았던 지역 마당극 운동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문화축제가 활성화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반면 대학로 연극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털어놨다. 연극이 흥행을 해도 비싼 대관료를 내고 나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매일 공연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청주로 간다. “서울서 잘 되더니 눌러살려나 보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시위를 떠난 화살 같아요. 이왕 배우로 나섰으니 장르 안 가리고 이것저것 해보려구요.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9월3일까지 대학로 두레홀1관. (02)741-5970.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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