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벗님들의 앨범 〈84 벗님들(난 몰라/늦은 밤 깊은 밤)〉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62) 1980년대 초 캠퍼스 그룹사운드들의 행방
1970년대 말, 캠퍼스 그룹사운드들은 방송사에서 개최하던 가요제들을 등용문 삼아 우후죽순처럼 명멸했다.
졸업 후 캠퍼스에서 세상으로 나간 뒤 음악 활동을 그만둔 이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어떤 이들은 방송가에 얼굴을 내밀고 독집 음반을 발표하며 전문적 음악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들이 지속적 음악활동을 하는 프로페셔널한 뮤지션으로 정착·발전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흐른 80년대로 넘어와야 할 것이다.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산울림이나 송골매 외에 어떤 그룹들이 활동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방송사, 어떤 음반사를 통해 ‘주류’의 문을 두드렸을까?
당시 젊은 취향의 음악인들이 모습을 비출 수 있었던 티브이 공간은, 80년대 초반에 생긴 한국방송의 ‘젊음의 행진’과 문화방송의 ‘영 일레븐’이었다. 이 두 프로그램은 80년대 경쟁적인 관계로 인기를 모으던 쇼 프로그램으로서, 떠오르는 청춘 남녀 스타들이 엠시(MC)로 선정되었고, 스타급 캠퍼스 밴드들이 항상 프로그램 마지막을 장식했다. ‘젊음의 행진’에서는 송승환과 김현주의 진행이나 대학생 댄싱팀 ‘짝궁’들을, ‘영 일레븐’에서는 이택림과 짝을 이루던 명현숙, 길은정 등의 진행이나 서세원 같은 몇몇 연기자들의 코미디를 기억할 수도 있다. 물론 대미를 장식하던 그룹 사운드는 전자에서는 송골매, 후자에서는 김수철이 있던 ‘작은 거인’이었다. 당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두 프로그램을 비교하며 보던 재미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캠퍼스 그룹의 음반은 어떤 곳을 통해 발표되었을까? 당시의 인기를 방증하듯 지구나 오아시스 같은 양대 음반사에서도 ‘활주로’나 ‘블랙테트라’의 음반을 발표했고, 다소 ‘비주류’에 속한 음반들을 많이 발매했던 유니버설이나 서라벌에서 ‘휘버스’나 ‘장남들’등의 음반을 발표했다. 그뿐인가. 서라벌을 통해 ‘피디(PD) 메이커’ 시스템으로 음반 제작을 하던 이흥주가 독립하여 만든 대성음반이라는 곳을 기억해야 한다. 이 음반사에 산울림의 김창완이 입사하면서 일명 ‘포스트 캠퍼스 그룹사운드’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된다. 김창완은 기획과 작사, 작곡 및 프로듀서를 겸했는데, 그와 이런저런 관련 속에 대성음반 둥지에서 음반을 낸 그룹들은 로커스트, 벗님들, 장끼들, 노고지리, 어금니와 송곳니, 하덕규 등이다.
대성음반의 첫 번째 기획이 산울림의 7집(1981)이었고 두 번째 기획은 ‘하늘색 꿈’으로 80년 제3회 티비시(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에서 개칭된) 대상을 차지한 로커스트의 데뷔앨범(1981)이다. 5인조 그룹으로 변모한 벗님들 역시 84년 앨범을 김창완이 프로듀서를 맡은 대성음반에서 발표했다. 78년 ‘제1회 티비시 해변가요제’ 출전 때는 통기타 듀엣이었다가, 데뷔 앨범(서라벌)을 낼 무렵에는 3인조 그룹 형태로 변했다는 전사는 예전에 언급한 바 있다.
송골매 및 활주로의 명곡을 작곡한 라원주, 후일 신촌블루스에 몸담게 된 엄인호, 그리고 미8군 무대 출신의 작곡가 박동률로 구성된 장끼들 역시 대성음반에서 데뷔 앨범(1982)을 냈는데, 이들 역시 ‘신촌파’에 대한 지난 글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하자. 그밖에, 김창완의 표현에 의하면 ‘민요를 록으로 만들던’ 노고지리가, ‘찻잔’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등이 실린 2집(서라벌, 1979)에서 산울림과 아주 유사한 성향으로 바뀐 것을 보면 김창완의 개입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많은 캠퍼스 그룹사운드는 로커스트처럼 추억과 기록을 담은 ‘기념음반’ 한 장만을 발매한 뒤 더는 활동하지 않았다. 반면, 몇몇 캠퍼스 그룹 출신 중에는 벗님들처럼 변신을 꾀하며 꾸준한 활동을 벌여 인기를 얻는 그룹으로 안착하거나, 혹은 장끼들처럼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계보가 기존의 미8군 무대 계보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어쨌든, 김창완과 대성음반은 이들에게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전문적인 음악인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감초 구실을 했음이 분명하다.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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