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발랄한 음악을 앞세운 대중적 인기의 정점, 이후에 그려질 비의(秘意)의 한국적 수묵화를 예비한 김수철의 2집 앨범(1984).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67) 하드 록부터 기타 산조까지: 작은 거인 김수철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이 노래는 잘 알려져 있듯 ‘젊은 그대’다. 어떤 이들은 이 노래를 월드컵 송가로 기억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재기와 용기를 위해 사용한 모 보험 광고의 로고송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일찍부터 캠퍼스송에서 응원가로 낙점되었다가, 이후 세월이 흐르며 전국민 애창가요로 업그레이드된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김수철이다.
1980년대의 김수철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듯, 슈퍼스타 조용필의 독주에 (전영록, 이용, 송골매 같은 캠퍼스 그룹사운드 등과 더불어) ‘감히’ 도전했던 가수 중 하나였다. 처음 그는, 아마추어 대학생들의 음악적 출발이 그랬던 것처럼, 3인조 캠퍼스 그룹사운드 ‘작은 거인’을 통해 등장했다. 1978년 전국대학축제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시작된 그(들)의 재기 넘치는 행보는 열혈 음악광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는데, 혹자들은 ‘한국 하드 록의 비조’ 혹은 ‘한국 로큰롤 키드의 원조’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드 록 넘버 ‘일곱 색깔 무지개’, 흔히 국악가요 1호라 칭송되는 ‘별리’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이때 나타났다. 김수철은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의 작곡가로서도 서서히 알려졌다.
하지만 김수철의 인기 정점이 솔로 음반(1983년) 발매 이후라는 점은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당시 구창모와 더불어 ‘록 밴드에서 독립한 솔로 가수’의 전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인기 가도의 신호탄이 된 1집 대표곡 ‘못다 핀 꽃 한 송이’는 잔잔하게 읊조리다 순간 폭발하는 세칭 ‘록 발라드’의 공식이 십분 활용된 곡이 아닐까. 또한 2집에 실린 호기로운 청춘찬가 ‘젊은 그대’와 ‘나도야 간다’도 줄지어 히트했다. 그뿐인가.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을 맡고 배우로까지 출연하면서 1984년을 ‘김수철의 해’로 만들었다.
그런데 앨범 커버들의 흑백 사진에 서린 비애감과 비장미는 일종의 전조였을까? 무대에서 깡충거리며 재기발랄하게 기타를 후리는 총아로서 급부상했지만, 곧 화려한 환호성과 멀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스타덤에서 멀어져 가는 대신 ‘원 맨 밴드’의 야심을 벼렸고, 기타를 물어뜯으며 현란하게 연주하는 ‘한국의 지미 헨드릭스 혹은 딥 퍼플’이라는 이미지 대신, 산조와 일렉트릭 기타가, 사물과 클래식 관현악기가 융합하는 꿈을 꾸었다. ‘국악의 대중화’ ‘전통 음악의 현대화’라는 그의 거대한 목표에 물꼬가 된 것은 영화음악, 무용음악을 비롯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게임, 2002년 월드컵 등 국가 이익과 절충된 행사음악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은막 뒤의 음악은 대중적이면서도 심미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매체였고, 국악을 대중적으로 접목하기 위한 훌륭한 소재였다.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 〈베를린 리포트〉(1991) 등 많은 문제작들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특히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등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김수철의 음악이 ‘한국적’ 모드로 결탁했다. 그 중에서 판소리와 조우한 〈서편제〉의 경우 영화음악 음반뿐 아니라 국악 음반으로도 큰 수치의 판매고(대략 70만장)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진정한 한국적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우리 음악’이란 궁극의 정언명령이자 난맥의 화두인지도 모른다. 이 목록에서 우리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을, 한국 록의 적자 서태지와 아이들, 넥스트 등을 쉽게 열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김수철의 시도가 여러 가지 면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할 것이 아니지만, 그의 작업이 국악을 대중화한 하나의 전범이자 대명사로 남았다는 것은 기록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난 시절의 ‘팝스 앤드 록’ 음악들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