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관창>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곡들이 대거 실린 정광태의 1984년 앨범.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72) 정광태의 <화랑 관창>에서 조용필의 <황진이>까지
오랜만에 책장에 꽂혀 있는 옛날 책 한 권을 꺼냈다. 마침 1970년대 중반에 전개되었던 ‘청년문화 논쟁’이 언급되어 있었다. 1974년 소설가 최인호와 가수 이장희 등을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언급한 한 일간지 기사가 있었는데, 대학신문(이른바 ‘학보’)이 이를 반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나 저제나 ‘여고생’이 좋아하는 문화를 ‘남대생’이 인정하기란 자존심 상하는 법이다. 그런데 당시 대학생 한 명이 “한국 청년문화의 정신은 화랑도”라고 언급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청년문화와 화랑도라. 당시 대학생 엘리트들의 문화 역시 ‘애국애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혹시 ‘화랑정신’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없을까?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인 정광태가 1984년에 발표한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의 히트곡은 <도요새의 비밀>이지만, <화랑 관창>과 더불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계백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곡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정광태는 현재 ‘독도명예군수’라는 지위를 가지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그의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보면 될 것이다. 단, 정광태가 1970년대 청년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런 궤적은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의 작가 최인호가 <상도>나 <해신>을 쓰게 되는 변화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광태처럼 앨범의 전체 주제를 역사 인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는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노래가 꽤 있었다. 그 가운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곡은 이동기의 <논개>(이건우 작사·이동기 작곡)다. 이 곡은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가수 본인에게는 무례한 말이겠지만, 그 뒤로 이만한 히트곡이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후문으로는 1980년대 말 김흥국이 불러서 히트시킨 <호랑나비>를 원래는 이동기가 부를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불운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동기는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 가수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음악외적으로 그다지 불운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수로서의 경력은 길고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가수가 부른 노래의 생명은 꽤 오래 남아 있었다. 장조의 전주에 이어 단조의 멜로디가 나오다가 후렴구에서 다시 장조로 변하는 이 곡은 이동기의 씩씩한 창법의 노래와 결합해서 한동안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논개의 숭고한 헌신적 애국심’을 상상하기에는 이 곡은 너무 경쾌하고 명랑했다. 거기에 “꽃입술 입에 물고”, “뜨거운 그 입술” 등의 가사도 선정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이 곡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몸 바쳐서 몸 바쳐서”라는 후렴구의 가사일 것이다. 이걸 야릇한 의미로 해석했다면 그 사람들(주로 남자들)이 문제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어쩔 수도 없는 법이다. 게다가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빌어 간 그 사랑 그 사랑 영원하리”라는 가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빌어 간’이 무슨 뜻이고, ‘사랑’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지금도 묘연하다. 어쨌든 이 곡은 술집(뒤에는 노래방)에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로 합창하기에 적절한 노래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조용필은 <황진이>를 불렀다. 이 곡은 국악이나 민요를 팝이나 록과 퓨전하는 그 당시 조용필의 음악적 모색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었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지 조용필 노래로서는 많이 히트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한참 뒤에는 일부에서 ‘한국 최초로 랩을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홍서범의 <김삿갓>이 등장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한편 동요, 군가 등에서 역사적 인물을 다룬 곡은 부지기수인데,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노래의 소재로 삼았던 사례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등장하면서 일단락을 지은 것 같다. 일단락치고는 다소 희극적이었지만…. 희극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소시적 들었던 <충무공의 노래>라는 군가 혹은 건전가요 때문이다.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으로 장엄하고 살벌하게 시작하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그때는 이런 노래가 ‘대중적’이었다. 하긴, 이 노래를 다시 들으니 희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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