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나온 윤수일 밴드의 2집으로 ‘아파트’가 실려있다.
한국 팝의 사건·사고 (74) 윤수일의 아파트
대중음악에 시대와 사회상이 묻어 있다는 점은 ‘다들 알고 있지만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다.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등 제목만으로도 구수하고 구슬픈 이미자의 곡들이 1960년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데에는 그 시절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거대한 사회현상과 그에 따른 망향(望鄕)의 정서와 불가분했기 때문이란 해석은 ‘해묵은’ 예일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10년 동안 도시인구는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대중음악이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인식할 이유는 없지만, 시대 및 사회상과 조응하는 면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는 있을 것이다.
1982년 나온 윤수일의 <아파트>는 제목에서 보듯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2년이라면,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가 막 각광받기 시작하던 시기다. 물론 지금처럼 아파트가 도시의 숲을 이룬 때는 아니고 아직은 동경의 대상인 시기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 아파트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는 곳에 있었든 아니었든, 윤수일의 곡은 당시 아파트가 유력한 주거형태로 선망되기 시작하고 도시인구가 전체 인구의 2/3에 이르렀던 시점의 풍경을 음악적으로 보여주는 스냅사진 같은 노래였다.
여기서 윤수일이 1970년대 중반 골든 그레입스의 기타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해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갈대>, <추억>, <나나>, <유랑자> 등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인기 남자 가수로 활약했다는 과거 경력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에 관해선 <한겨레> 2006년 1월 19일치에 실린 이 연재의 36회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가 1980년을 끝으로 트로트 고고에 기댄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자신의 진정한 1980년대를 개막했다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1년 <떠나지마>와 <당신은 나의 첫사랑>을 타이틀로 한 윤수일밴드의 데뷔 앨범은 그가 솔로 시절에 ‘마음껏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못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 음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수일밴드 1집은 록 음반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풍의 <떠나지마>는 그의 음악경력의 시발점을 무엇인지 보여주며, 흥겨우면서 거친 <제2의 고향>은 솔로 시절 트로트 고고를 앞세우면서도 그가 당대의 영미권 록 음악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음반에서 그는 트로트의 잔재를 거의 털어내고 하드 록에 가까운 거친 곡과 느린 템포의 록 발라드를 중심으로 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음악을 펼칠지 음악으로 포효한 것이다.
1982년 발표한 2집은 윤수일의 지향점이 대중과 가장 크게 합일한 대표작일 것이다. 타이틀 곡 <아파트>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거의 국민가요 급으로 히트했고, 뒤에 대표적인 스포츠 경기 응원가로, 노래방 애창가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다시 녹음하여 수록한 <제2의 고향> 역시 크게 히트하며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와 유사하게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록 넘버로 남았다. 윤수일밴드는 1984년 발표한 3집에서 <아름다워>를, 1985년 4집에서 <환상의 섬>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전영록 부럽지 않은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윤수일은 검은 선글라스에 가죽옷을 걸친 채 마이크대를 잡고 다리를 흔들며 노래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지금 다시 유심히 들어보면 깜짝 놀랄 대목이 있을 만큼 그의 노래는 완연한 록 사운드에 바탕한 것이었다. 윤수일이 늘 첨단의 사운드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요계에서 밴드를 이끌며 메인스트림 록 음악의 틀을 다진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런데 그 시절 윤수일밴드의 음악은 ‘시티 뮤직’으로 불렸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또 적합하든 아니든, 시티 뮤직이란 명명은 1980년대 윤수일밴드의 음악을 특징짓는 용어로 너른 공감을 얻었다. 아참, 그 시절 <유.에프.오.>라는 곡을 발표한 적도 있다. 궁금한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아도 좋을 듯.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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