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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도시인구 증가와 강남개발 등에 입은 도시의 송가, ‘시티뮤직’

등록 2006-11-12 18:19수정 2007-04-17 11:41

1982년에 나온 윤수일 밴드의 2집으로 ‘아파트’가 실려있다.
1982년에 나온 윤수일 밴드의 2집으로 ‘아파트’가 실려있다.
한국 팝의 사건·사고 (74) 윤수일의 아파트
대중음악에 시대와 사회상이 묻어 있다는 점은 ‘다들 알고 있지만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다.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등 제목만으로도 구수하고 구슬픈 이미자의 곡들이 1960년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데에는 그 시절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거대한 사회현상과 그에 따른 망향(望鄕)의 정서와 불가분했기 때문이란 해석은 ‘해묵은’ 예일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10년 동안 도시인구는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대중음악이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인식할 이유는 없지만, 시대 및 사회상과 조응하는 면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는 있을 것이다.

1982년 나온 윤수일의 <아파트>는 제목에서 보듯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2년이라면,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가 막 각광받기 시작하던 시기다. 물론 지금처럼 아파트가 도시의 숲을 이룬 때는 아니고 아직은 동경의 대상인 시기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 아파트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는 곳에 있었든 아니었든, 윤수일의 곡은 당시 아파트가 유력한 주거형태로 선망되기 시작하고 도시인구가 전체 인구의 2/3에 이르렀던 시점의 풍경을 음악적으로 보여주는 스냅사진 같은 노래였다.

여기서 윤수일이 1970년대 중반 골든 그레입스의 기타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해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갈대>, <추억>, <나나>, <유랑자> 등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인기 남자 가수로 활약했다는 과거 경력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에 관해선 <한겨레> 2006년 1월 19일치에 실린 이 연재의 36회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가 1980년을 끝으로 트로트 고고에 기댄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자신의 진정한 1980년대를 개막했다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1년 <떠나지마>와 <당신은 나의 첫사랑>을 타이틀로 한 윤수일밴드의 데뷔 앨범은 그가 솔로 시절에 ‘마음껏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못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 음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수일밴드 1집은 록 음반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풍의 <떠나지마>는 그의 음악경력의 시발점을 무엇인지 보여주며, 흥겨우면서 거친 <제2의 고향>은 솔로 시절 트로트 고고를 앞세우면서도 그가 당대의 영미권 록 음악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음반에서 그는 트로트의 잔재를 거의 털어내고 하드 록에 가까운 거친 곡과 느린 템포의 록 발라드를 중심으로 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음악을 펼칠지 음악으로 포효한 것이다.

1982년 발표한 2집은 윤수일의 지향점이 대중과 가장 크게 합일한 대표작일 것이다. 타이틀 곡 <아파트>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거의 국민가요 급으로 히트했고, 뒤에 대표적인 스포츠 경기 응원가로, 노래방 애창가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다시 녹음하여 수록한 <제2의 고향> 역시 크게 히트하며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와 유사하게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록 넘버로 남았다. 윤수일밴드는 1984년 발표한 3집에서 <아름다워>를, 1985년 4집에서 <환상의 섬>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전영록 부럽지 않은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윤수일은 검은 선글라스에 가죽옷을 걸친 채 마이크대를 잡고 다리를 흔들며 노래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지금 다시 유심히 들어보면 깜짝 놀랄 대목이 있을 만큼 그의 노래는 완연한 록 사운드에 바탕한 것이었다. 윤수일이 늘 첨단의 사운드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요계에서 밴드를 이끌며 메인스트림 록 음악의 틀을 다진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런데 그 시절 윤수일밴드의 음악은 ‘시티 뮤직’으로 불렸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또 적합하든 아니든, 시티 뮤직이란 명명은 1980년대 윤수일밴드의 음악을 특징짓는 용어로 너른 공감을 얻었다. 아참, 그 시절 <유.에프.오.>라는 곡을 발표한 적도 있다. 궁금한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아도 좋을 듯.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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