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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유리 깨는 소리도 음악이다

등록 2007-10-24 19:40

‘아로스 노바’ 한국 공연하는 재독 작곡가 진은숙씨
‘아로스 노바’ 한국 공연하는 재독 작곡가 진은숙씨
‘아로스 노바’ 한국 공연하는 재독 작곡가 진은숙씨
군부독재 정권 피해 유학길
바그너의 파지즘 지금도 증오
만돌린·아코디언 연주 등
‘새로운 클래식’ 선사할게요

진은숙(46·재독 작곡가)의 유학은 망명같은 것이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그는 혈혈단신 독일로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전두환 정권이 싫었고, 답답한 공기가 싫었다. 평범한 개인으로도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고, 예술가로 살기는 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다. “뿌리 없이 붕 떠있는” 존재로서 외롭고 가난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한 10년 쯤 했죠. 학위만 따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에요. 아무도 지원해 줄 사람이 없는 외국에서, 그것도 동양 여자로서 발딛고 성공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23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동양 여자’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곱씹었을 두 가지 콤플레스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음악 작곡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는 이제 지난 시절을 추억삼아 말할 수 있게 됐다. 음악계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쓸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6월30일에는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그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초연돼 호평을 받았다. 독일의 오페라 전문지 <오페른벨트>가 이 작품을 ‘올해의 초연’에 선정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나가노(켄트 나가노-바이에른 주립오페라단 상임지휘자)가 대단한 모험을 한 거지요. 취임하고 처음 여는 오페라페스티벌의 오프닝을 현대음악으로, 그것도 동양 여자의 작품을 택했으니까요. 공연이 망하면 나가노도 망하고 저도 망하는 거였지요.(웃음)” 극장 쪽이 만류했지만 일본계 미국인인 나가노가 끝까지 설득했다. 그는 “나가노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맡고 있는 그는 현대음악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을 한해 2차례씩 연다. 선곡을 그가 직접 하는데, 11월6일 공연에서는 나가노를 그에게 소개해준 조지 벤자민이 작곡한 작품을 선보인다.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비올라 비올라’. 벤자민은 그의 작품 ‘문자 퍼즐’ 등 3개 곡을 처음으로 지휘해 호평을 이끌어 냈으며, 촉망받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다. 연주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비올라 연주자 리차드 용재 오닐이 맡았다.

이번 공연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서울시향이 서울대 작곡과 최우정 교수에게 위촉한, 첼로와 현을 위한 실내협주곡 ‘러브송’의 세계 초연이다. 유명 오케스트라가 국내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해 연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케이비에스교향악단 같은 곳에서 국내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했어요. (현대음악의 상황이) 80년대보다도 못한 거죠.”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음악을 소비”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금은 클래식이 작곡된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양한 음악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의 음악에서는 만돌린이나 아코디언 등 클래식에서는 쓰지 않는 악기들이 등장한다. 유리잔을 직접 깨기도 한다. 진부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화롭다. 그리고 자신만의 소리가 있다. 그가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저도 클래식 좋아해요. 바그너만 빼면요. 정치적인 배경도 싫고, 너무 과대망상적이에요. 스케일은 큰데 내용은 없어요. 세계를 제패하고 그런 건 있을 수도 없고 용납해서도 안 되죠.” 바그너에 드리워진 파시즘을 증오하는 것을 보면 동생 진중권(44)씨와 꼭 닮았다. <비올라, 비올라> 공연은 11월2일 케이비에스홀, 6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7일에는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진은숙이 직접 해설하는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디브이디 감상회를 연다. 공교롭게도 11월6일 공연은 잉글리시체임버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인 그의 시아버지 랄프 고토니의 내한 공연 날짜와 겹쳤다.

문의 (02)3700-6300.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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