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꿈꿔서 미안해’ 한 무대서는 전무송씨 가족
연극 ‘꿈꿔서 미안해’ 한 무대서는 전무송씨 가족
“바로 내 이야기야. 연극하는 사람들은 연극에 몰두하다 보니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다고. 그렇지만 가족들은 이해가 되질 않아요. 더더구나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들은 우리들을 보고 꿈꾸고 있다고 하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연극은 생존의 의미야.”
지난 24일부터 서울 신촌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꿈꿔서 미안해>의 주역 배우 전무송(66·현 경기도립예술단 감독)씨에게는 이번 연극은 꼭 자기 자신의 이야기다. 외곬 연극인을 다룬 이 연극을 통해 “늘 느끼고 있지만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그동안 연극하느라고 고생시킨 아내(이기순·61)와 가족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고 전씨는 털어놓았다.
연출가 임영웅(71), 극작가 윤대성(68), 배우 전무송 등 한국 연극계의 세 중진이 모인 연극 <꿈꿔서 미안해>는 가족은 뒷전으로 둔 채 연극에 미친 코미디 전문 노배우 ‘독고’의 연극 인생을 그리는 휴먼 드라마이다. 연극인들이 연극인의 이야기를 연극을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리얼’한 연극이다. 주인공 독고는 공연 도중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다. 아들 내외는 10년 만에 그를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 김씨와 재회를 시키지만, 다시 연극을 하러 나간 독고는 결국 공연 중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
올해로 연기 인생 46년을 맞는 전무송씨 또한 극 중의 ‘독고’ 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배우로서의 외길만을 걸어왔다. “극 중 대사에도 있지만 부인들은 ‘아직도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고 말하지. 이런 이야기하면 부인들에게 야단 맞겠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이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라고. 그게 연극하는 사람들의 숙명인걸 뭐.” 그러면서 그는 절친한 친구인 이호재(66)씨의 일화를 살짝 들려줬다. “한번은 호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마침 그 날이 호재가 하는 연극 개막일이었어. 어쩔 수 없이 내가 호재 대신 상주 노릇을 했어. 연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 연극은 관객들과의 약속이니까 그게 우선이지 사적인 것이 나중이예요. 물론 가족들에게야 미안하지.”
그와 같이 연극의 길을 걷고 있는 큰딸 전현아(35)씨가 옆에서 아버지의 회고를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가정을 내팽개치고 떠나신 적은 없었지만 가족들 대소사에는 불참한 일이 많았다”며 “제가 엄마 입장이었다면 불만이 많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아역배우 출신 연출가인 사위 김진만(38)씨도 “극 중에 제가 맡은 역할은 굉장히 이상적인 아들이라서 착하기만 한데, 실제 나 같았으면 ‘도대체 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예요’라고 막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이제 같이 연극을 하면서 연극인 아버지를 더 이해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낮에 공연이 없을 때는 저희하고 많이 놀아주신 편이었어요. 오히려 또래 아이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전현아) “이 연극에서 나오는 이런 갈등은 연극배우 뿐만 아니라 꿈을 좇는 모든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게 마련이죠.”(김진만)
김진만-전현아씨 부부는 이 연극에서 실제처럼 아들 내외로 출연해 ‘하늘 같은’ 선배 배우와 연기대결을 펼친다. 세 사람이 한 연극에서 배우로 호흡을 맞추는 것은 2003년 윤대성 극작의 <당신, 안녕> 이후 꼭 4년 만이다.
장인과 딸, 사위와 한 무대에 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전무송씨는 “처음에는 좀 그런 편이었는데 ‘무대에서는 배우일 뿐이다. 자기가 맡은 역에 충실하고 배우로서 만남을 생각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속속들이 심리를, 성격을, 버릇을 서로 다 안단 말이야. 연습하고 집에 들어가면 작품 이야기를 한단 말이예요. 진만이가 연출까지 겸하니까 ‘거기서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이제는 가르침을 받는다니까.”
11월25일까지 공연하는 <꿈꿔서 미안해>에는 <발칙한 미망인> <친정엄마> 등에서 개성있는 여인상을 보여준 중견배우 성병숙씨가 독고의 부인 역을 맡고, 연극과 텔레비전, 영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상철(국립극단 전 예술감독)씨와 허정규씨, 극단 ‘작은 신화’의 단원 정세라씨 등이 출연한다. (02)334-5915·5925.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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