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5일 콘서트 여는 신해철
24~25일 콘서트 여는 신해철
어떤 노래가 뜨는지 알지만…
우리말 맞는 멜로디 찾아
내가 하고싶은 음악 할래요 신해철(39)을 인터뷰하는 것은 즐겁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달변에, 현란한 육두문자까지. 인터뷰에 이골이 났을 텐데도 처음인듯 신선하다. 신해철이 데뷔 20년 기념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찾아간 서울 공덕동 사무실. 아르바이트생 차림의 키작은 청년이 등을 보인 채 자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아뿔사, 신해철이었다. “팬서비스 차원이죠. 10년 기념 공연은 안했지만 20년은 느낌이 좀 다르니까.” 1988년 대학가요제로 데뷔했으니 엄밀히 말해 ‘20주년’은 아니다. 미리 잔치 상을 차린 이유는 “내년에 바쁠 것 같아서”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로 데뷔한 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의 아이돌 스타 시절을 거쳐, 밴드 넥스트의 격정과 모노크롬·비트겐슈타인의 실험적 음악에 이르기까지. “질풍노도의 시기와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그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 같아요. 제가 ‘노토리어스’(악명높은)와 ‘페이머스’(유명한)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이런 경우는 드물죠. 저에게 맡겨진 배역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고3 무렵,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 뒤 그는 “대성하기 전까지 하지 말아야할 것” 30가지를 노트에 적었다. 화투, 당구, 스키 등등. 그러나 하나둘씩 무너져갔다. “지금 최후의 저지선은 골프다. 그것만큼은 때려죽어도 안 할라고.” ‘집 안사기’도 아직 지켜내고 있다. “지금까지 팔린 음반이 600만~700만장은 될 텐데, 제가 아직 집이 없어요. 집 안 산다고 서약했거든요. 대신 음악하고 유학갔다 오고, 원없이 썼어요. 술 값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을 썼을 거에요.” 고3 때 기준으로 그는 얼마나 ‘대성’한 걸까? “택도 없어요. 머릿속으로 늘 핑크 플로이드를 그리며, ‘크게 떠야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성이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 모노크롬 시절 월드뮤직에 국악과 테크노를 결합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요즘 가요를 집중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 언어에 맞는 멜로디를 특화시켜야 해요. 히트곡이요? 히트곡을 써본 사람은 히트 코드를 알아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죠.” 2002년 대선에서 지지후보를 밝힌 걸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보수매체들이 나를 비틀고 씹고 왜곡했다”며 “이러다간 음악을 못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겁나서 피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낭비하는 게 싫은 것”이라고 했다. 1년 전, 그는 회사를 차렸다. 음반사와 매니지먼트 사업을 겸하는데, 소속 밴드만 10팀이 넘는다. 여자 3인조 댄스팀도 있다. 밴드 60여명에 직원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 홍대 앞에 극장과 클럽도 차렸다. 대학에서 종종 강의도 한다. 주제는 ‘협박과 경쟁’. “기성세대들이 젊은세대를 놀란 토끼처럼 만들어놨어요. 굶어 죽는다, 나라 망한다는 협박이 제대로 먹혔죠. 대학 강연하는 이유는 ‘겁 먹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서에요. 강연 끝나고 대학생들의 표정이 좀 풀리면 보람을 느끼죠.” 최근에는 7년동안 계속해온 라디오 디제이를 그만뒀다. “시간에 상관없이 필받을 때 방송하는 타입인데” 정시출근을 하라고 해 마찰이 생겼다. 대신 인터넷 고스트스테이션(ghoststation.co.kr)에서 “하고 싶을 때 아무때나” 방송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방점은 데뷔 20년보다는 솔로에 두고 있어요. 솔로공연 16년 만이에요. 벌써 긴장돼요. 넥스트 이후 못듣던 노래들(재즈카페 등)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24~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02)517-4811.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사이렌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말 맞는 멜로디 찾아
내가 하고싶은 음악 할래요 신해철(39)을 인터뷰하는 것은 즐겁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달변에, 현란한 육두문자까지. 인터뷰에 이골이 났을 텐데도 처음인듯 신선하다. 신해철이 데뷔 20년 기념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찾아간 서울 공덕동 사무실. 아르바이트생 차림의 키작은 청년이 등을 보인 채 자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아뿔사, 신해철이었다. “팬서비스 차원이죠. 10년 기념 공연은 안했지만 20년은 느낌이 좀 다르니까.” 1988년 대학가요제로 데뷔했으니 엄밀히 말해 ‘20주년’은 아니다. 미리 잔치 상을 차린 이유는 “내년에 바쁠 것 같아서”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로 데뷔한 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의 아이돌 스타 시절을 거쳐, 밴드 넥스트의 격정과 모노크롬·비트겐슈타인의 실험적 음악에 이르기까지. “질풍노도의 시기와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그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 같아요. 제가 ‘노토리어스’(악명높은)와 ‘페이머스’(유명한)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이런 경우는 드물죠. 저에게 맡겨진 배역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고3 무렵,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 뒤 그는 “대성하기 전까지 하지 말아야할 것” 30가지를 노트에 적었다. 화투, 당구, 스키 등등. 그러나 하나둘씩 무너져갔다. “지금 최후의 저지선은 골프다. 그것만큼은 때려죽어도 안 할라고.” ‘집 안사기’도 아직 지켜내고 있다. “지금까지 팔린 음반이 600만~700만장은 될 텐데, 제가 아직 집이 없어요. 집 안 산다고 서약했거든요. 대신 음악하고 유학갔다 오고, 원없이 썼어요. 술 값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을 썼을 거에요.” 고3 때 기준으로 그는 얼마나 ‘대성’한 걸까? “택도 없어요. 머릿속으로 늘 핑크 플로이드를 그리며, ‘크게 떠야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성이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 모노크롬 시절 월드뮤직에 국악과 테크노를 결합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요즘 가요를 집중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 언어에 맞는 멜로디를 특화시켜야 해요. 히트곡이요? 히트곡을 써본 사람은 히트 코드를 알아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죠.” 2002년 대선에서 지지후보를 밝힌 걸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보수매체들이 나를 비틀고 씹고 왜곡했다”며 “이러다간 음악을 못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겁나서 피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낭비하는 게 싫은 것”이라고 했다. 1년 전, 그는 회사를 차렸다. 음반사와 매니지먼트 사업을 겸하는데, 소속 밴드만 10팀이 넘는다. 여자 3인조 댄스팀도 있다. 밴드 60여명에 직원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 홍대 앞에 극장과 클럽도 차렸다. 대학에서 종종 강의도 한다. 주제는 ‘협박과 경쟁’. “기성세대들이 젊은세대를 놀란 토끼처럼 만들어놨어요. 굶어 죽는다, 나라 망한다는 협박이 제대로 먹혔죠. 대학 강연하는 이유는 ‘겁 먹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서에요. 강연 끝나고 대학생들의 표정이 좀 풀리면 보람을 느끼죠.” 최근에는 7년동안 계속해온 라디오 디제이를 그만뒀다. “시간에 상관없이 필받을 때 방송하는 타입인데” 정시출근을 하라고 해 마찰이 생겼다. 대신 인터넷 고스트스테이션(ghoststation.co.kr)에서 “하고 싶을 때 아무때나” 방송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방점은 데뷔 20년보다는 솔로에 두고 있어요. 솔로공연 16년 만이에요. 벌써 긴장돼요. 넥스트 이후 못듣던 노래들(재즈카페 등)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24~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02)517-4811.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사이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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