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는 춤꾼 하용부씨
연극하는 춤꾼 하용부씨
춤판에서든 연극무대에서든 그가 춤을 추면 은근한 흥과 함께 잔잔한 긴장이 느껴진다. 몰아지경에 빠져 엉거주춤 두 팔을 들고 엉덩이를 살짝 뺀 채로 “몸에 뼈다구가 없이”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듯” 건들거리다가 여차하는 순간 댓바람으로 춤사위를 펼쳐낸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은 그의 춤을 두고 “바로 이 ‘휨’과 ‘폄’ 사이의 탄력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고 말한다.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53). 밀양백중놀이 양반춤과 범부춤, 밀양북춤 인간문화재이며 이윤택(56)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배우이자 밀양연극촌 촌장이다.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로
연출가 이윤택과 20년째 콤비
이번엔 ‘오구’서 박수무당역
밀양과 서울을 오가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치는 그를 25일 서초동 무용원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학생들에게 “따라하는 무용수가 되지 말고 생각하면서 춤을 추는 무용가가 되어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요즘 그는 고양문화재단이 한국연극 100주년을 기념해 4월4~13일 경기도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1577-7766)에서 공연하는 연극 <오구>(연출 이윤택) 공연을 앞두고 있다. 노모의 장례식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과 그로 인한 감동과 화해를 다룬 이 연극에서 그는 박수무당 석출 역을 맡아 양반춤과 범부춤, 그리고 창작춤 영무가 어우러진 전통 춤사위를 보여준다.
그는 춤판과 연극판을 넘나든다. 특히 이윤택씨와는 오랜 콤비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연희극을 동시대 공연양식으로 재창조하는 이윤택의 작업 중심에는 어김없이 영남춤꾼인 그의 몸짓이 있다. 그의 말대로 “춤은 몸으로 말하는 언어”라면 연극을 포함해 모든 몸짓이 그에게는 춤인 것이다.
그는 다섯살 때부터 조부이자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였던 하보경(1997년 작고)에게 춤을 배웠다. 하보경은 “소리는 호남이지만, 춤은 영남이다” “사내 몸이 춤 없이 멋이 되는가” “저승 가서도 나는 밤낮 춤만 출거다”라고 했던 마당춤의 큰 재인이다. 하용부는 춤꾼의 불안정한 생활이 두려워 잠시 방황도 했다. 그러나 증조부 하성옥으로부터 4대째 이어져내려오는 ‘밀양춤’을 못 잊어 다시 춤판으로 돌아와 조부를 지게에 모시고 다니며 춤을 익혔다. “할아버지의 춤을 잘 아시는 분들이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할 때가 가장 기분 좋아. 영남 춤 제1인자의 춤사위를 제자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고 하는 말은 춤꾼에게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겠어요?”
자신만의 춤세계를 만들어가던 그는 1989년 문화게릴라 이윤택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연희단거리패 워크숍에서 전통춤을 강습하다 이윤택으로부터 아예 함께 연극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90년부터 2005년까지 <오구>를 비롯해 <사혼> <길 떠나는 가족> <세월이 좋다> <어머니> <산너머 개똥아> <일식> <문제적 인간 연산> 등에 안무가와 배우로 참여해 연극에 전통춤사위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는 “이윤택씨가 자신이 추구하는 전통의 재해석의 토대가 하용부의 몸이라고 생각하듯이 이윤택씨 또한 나의 스승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97년에는 <어머니>로 백상예술제 인기상도 받았다.
그는 올해 초부터 사비를 털어 밀양시 산내면 가인리 초등학교 폐교를 밀양전통예술촌으로 꾸미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호남의 소리’에 견줘 소외받는 ‘영남의 춤’을 정립하기 위해서다. 조부 하보경 기념사업회와 영남춤연구소를 이곳에 차려 다음달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평생을 갈고 닦아도 모자라는 작업”이라는 밀양춤을 아들 대봉(28)에게 전수하고 있다. 그에게 춤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춤은 음악 위에서 자기의 좋은 느낌을 표현하는 몸짓이다. 그거보다 좋은 게 어디있노. 그거만 하고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출가 이윤택과 20년째 콤비
이번엔 ‘오구’서 박수무당역
연극하는 춤꾼 하용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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