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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사람] 소녀때 꿈, 90살 어머니께 ‘나빌레라’

등록 2008-04-11 19:15

나수자(58)씨 /이상숙씨
나수자(58)씨 /이상숙씨
58살에 우리춤 무대 데뷔한 나수자씨
학창시절 무용반장…묻었던 춤꾼 본능 한껏
춤사위 생일상 받은 어머니 “고맙다” 눈물

지난 10일 저녁 서울 필동 남산한옥마을 안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보기 드문 감동의 춤판이 열렸다. 때로는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뿐한 몸짓으로, 때로는 절절히 맺힌 한을 토해내 듯 애끓는 사위로 300여명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 이 날의 춤꾼은 나수자(58)씨. 전통예술원 산하 우리소리 예술단이 기획한 이 무대는 나씨의 첫 데뷔 공연이자 아흔살 된 어머니 이상숙씨의 생신 축하잔치였다.

“내 또래 여느 여성들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고 살림하느라 ‘나’는 잊고 살았어요. 그런데 셋째인 막내 아들까지 대학에 보내고 쉰살 고개를 넘고보니 묻어두었던 학창시절의 꿈이 되살아나더라구요.”

30여 년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나씨의 꿈은 바로 한국무용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때까지 줄곧 학교 무용반장을 했을 만큼 춤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대단했던 그였다. 하지만 완고한 할아버지의 반대로 춤꾼의 길을 포기하고 대학 졸업한 이듬해 25살에 결혼해 2남1녀의 엄마가 됐고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외국생활을 되풀이 해야 했다.

“처음엔 취미도 살리고 운동도 할 생각으로 집 근처 백화점의 문화센터에 등록했는데 이렇게 공연까지 하게 되니 꿈만 같아요. 나이든 제자를 이끌어준 스승님과 기꺼이 지지하고 응원해준 가족들한테 감사할 따름이예요.”

둘째 딸로부터 누구보다 뜻깊은 생일상을 받은 어머니는 “고맙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2돌 된 손주를 포함한 자녀들은 “놀랍다”며 기쁨을 함께 했다. 뭐니뭐니해도 이날 공연의 숨은 후원자는 남편 김현중(한화건설 대표)씨다. 고교 때 같은 성당과 이웃한 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일찌기 나씨의 춤추는 모습을 담장 너머로 본 적도 있었다는 남편은 누구보다 아내의 못다한 열정을 이해해주었다. 그 덕분에 이 날 공연은 녹음된 음악 대신 국립창극단원들의 연주 속에 한층 실감나고 흥겹게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뒤 그의 소감은 단 두 마디. “안 넘어지고 잘했네. 수고했어.”

그가 ‘스승님’이라 깍듯이 모시는 이는 자신보다 17년이나 아래인 우리소리 예술단 최윤희 대표로, 그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용기를 주고 헌신적인 지도를 해줬다. 덕분에 그는 태평무, 장고춤, 이매방류 살풀이춤까지 전문 무용가들에게도 난이도가 높은 작품들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30년 넘게 무용을 쉬었던 분같지 않게 춤사위나 열정이 대단하다. 10년, 20년 뒤에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최씨는 한국무용은 나이가 들수록 깊은 표현이 가능해, 요즘 입문하는 제자들의 평균 나이가 60대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씨는 앞으로 예술관과 함께 하는 공연은 물론 지금까지처럼 노인복지관 등에서 자선 공연도 계속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작가 이강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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