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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노래극으로 가슴에 묻은 ‘군 의문사’ 아들 ‘초혼’

등록 2008-12-23 14:28수정 2008-12-23 18:19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19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가족들을 위한 노래극 ‘너를 보내고’를 공연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19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가족들을 위한 노래극 ‘너를 보내고’를 공연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평화의 나무 합창단’ 2회 정기공연 ‘너를 보내고’
선곡은 물론, 콘티 작성·안무 등 대부분 ‘자작’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노래 ‘감염’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올 하반기 안방을 뜨겁게 달궜던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얘기가 아니다. ‘노래를 통해 평화와 생명의 문화운동을 펼쳐가는 시민합창단’인 ‘평화의 나무 합창단’(단장,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2007년 가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임동원)이 주최한 공개오디션에서 선발된 40여명의 순수 시민음악인으로 구성된 ‘시민합창단’이다. 이들은 출범 1년을 갓 넘었지만, 지난 5월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첫 번째 정기공연을 연데 이어 8월15일 ‘8·15 대축전 남측 행사’ 축하 공연, 10월24일 YTN 투쟁 지지공연 등을 통해 서서히 시민사회에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중이다.

 [영상] 군 의문사 어머니를 위한 노래극 ‘너를 보내고’/ 1시간13분

 이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지난 19일 저녁 7시 서울 조계사 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노래극 ‘너를 보내고’를 선보였다. 합창단의 두 번째 정기공연이기도 한 이 공연은 이 합창단 단원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2% 부족한 한계’까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너를 보내고’는 ‘군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극이다. 합창단이 부른 총 14곡의 합창 및 독창곡이 극의 뼈대다. 여기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내레이션를 맡고, 각각 13년차와 5년차 배우인 이영주씨(어머니 역)와 권태진씨(아들 역)가 연기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전장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가 끝나고 나면, 군대간 아들의 첫 휴가를 고대하며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놓은 어머니가 등장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는 동안 벽엔 아들의 영정사진이 비친다. 그 영정사진은 ‘짧은 셀렘’ 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사인이라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10년 고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합창단은 이어 가곡 <향수>, 동요 <송이송이>, 민중가요 <만화경>과 <사계> 등을 통해 아들의 어린 시절을 되살린 뒤, <이등병의 편지>로 군대로 떠나는 아들을 환송한다. 하지만, 첫 휴가 나올 아들에게 부쳐질 어머니의 편지는, 국방부에서 배달된 아들의 유골 앞에서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가 돼버린다. 이어 군부대도, 국방부도, 청와대도 알려주지 않는 아들의 죽음을 알기 위해 투사가 돼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웅장한 합창곡으로 변신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노래극의 절정은 어머니가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살아 있다면 이젠 서른 살이 됐을 아들에게 “이 자식아 빨리 촛불 꺼. 다 녹기 전에…”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그 순간 꿈에도 그리던 아들은, 군복을 입은 채 어머니께 다가와 촛불을 끄고 어머니를 끌어안는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이 군대갈 때 둘러줬던 그 목도리를, 다시 어머니께 둘러주고는 떠나간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19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연 군 의문사 가족들을 위한 노래극 ‘너를 보내고’ 공연에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나레이션을 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19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연 군 의문사 가족들을 위한 노래극 ‘너를 보내고’ 공연에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나레이션을 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짧은 만남. 그러나 국방부를 비롯한 이 사회의 두터운 벽은 아직 이런 짧은 만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600 건 가운데 지금까지 처리된 것은 모두 353 건. 그나마 121 건만 진상이 밝혀졌다. 그보다 2배가 많은 247 건은 아직 손도 못 댔다. 이 247 건과 관련된 유가족들은 아들과의 ‘짧은 만남’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합창단은 유가족들이 아들과 다시 만나고, 아들의 명예가 사회적으로 다시 회복되는 그날을 기원하며 <너를 보내고>와 <그날이 오면>을 합창한다.

 노래극 ‘너를 보내고’는 합창과 극을 통해 군 의문사 유가족들의 한을 형상화함으로써,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동시에, 사회를 향해 이들의 아픔을 풀어줄 것을 호소한다. 이 노래극은 그래서 ‘잃어버렸다는 10년’에 집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가속도를 높이는 이즈음 더욱 그 울림이 크다.

 하지만 시민합창단인 ‘평화의 나무 합창단’에게 이 공연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 공연은 노래 선곡은 물론, 콘티 작성, 안무 등 모든 것을 대부분 합창단 내부에서 소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공연한 첫 공연이 ‘외주화’의 비율이 높았던 데 비해, 이번에는 ’내부화‘의 비율을 크게 높인 것이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지난 9월 중순 ‘평화의 나무 합창단’에 공연의뢰를 해왔을 때 공연 준비를 대부분 내부에서 소화하기로 한 것은 우선 제작비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자신들의 공연을 자신들이 직접 만든다는 만족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원들이 나름의 생업이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작업을 자체로 소화해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또 시간도 많지 않았다.

 우선 노래 선곡과 콘티 작업에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근자와 합창단 운영진이 매달렸다. 박진원 통일문화재단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방승국 합창단 단원 대표(회사원), 윤희정 부대표(주부),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파트장, 이순이 전 단원대표(단국대 강사·심리학), 단원 박기범(화정고 교사)씨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노래를 고르고 이야기를 짜 나갔다.

 노래는 선곡되는 대로 합창곡 편곡으로 이름이 높은 김준범씨에게 의뢰해 만들어나갔다.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가 김준범씨의 손을 거쳐 웅장한 합창곡으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김준범씨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상당히 뜸을 들였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였던 만큼, 특별히 노력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합창단원 모두 대만족. ‘평화의 나무 합창단’ 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탄생한 것이다.

 합창단원들은 김준범씨가 편곡을 마치면, 그 곡으로 곧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솔로 부분은, 합창단원들이 서로 적임자를 추천해 결정했다. 연습이 진행되면서 파트별 목소리들이 제법 화음을 만들어갔지만, 문제는 입시 등 각박한 현실을 다룬 노래 <만화경>이었다. 극의 흐름과 노래의 성격상 율동이 필요한데, 율동패도 아닌 합창단을 데리고 율동을 만들고 안무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창단은 이 과제도 ‘자체 해결’했다. 알토 파트장이기도 한 김상희씨(도서출판 오즈북스 편집장)가 ‘만장일치’로 율동 안무를 맡기로 한 것이다. 10년 전 노동자를 위한 연극제에서 ‘국무총리상’까지 받을 정도로 끼를 갖춘 김 파트장은 좁은 무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안무를 만들어냈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노래극 ‘너를 보내고’에서 극중 어머니와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이 상봉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노래극 ‘너를 보내고’에서 극중 어머니와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이 상봉하고 있다. 영상캡쳐 박종찬 기자

 10월 들어서 콘티를 완성하고 공연 날짜와 공연 장소가 확정되면서 합창단원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11월 중순부터는 매주 화요일 한차례 하던 합창 연습을 화·금 두 차례로 늘렸고, 공연이 낀 12월 셋째주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을 하는 강행군에 돌입했다. 공연날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된 리허설에 맞추기 위해 합창단원 중 몇몇은 회사에 휴가를 내야만 했다.

 드디어 막이 올랐고, 어머니들의 애닯은 흐느낌 속에 공연이 진행됐다. 유가족을 비롯해 공연 관람객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공연을 보면서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합창단원들은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노래의 완성도가 ‘합창단원들의 기대’ 만큼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영기씨(회사원)는 “개인적으로 연습이 많이 부족했다. 공연 끝나고 유족들을 보는 순간 너무나 미안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대학 때 연극을 해봤다는 여상구씨(베이스·스파게티 전문점 스패뉴 종각점 점장)도 이번 공연에 대해 “연극적 요소를 도입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노래실력에서는 더 노력해야 할 것이 많다고 ‘고백’한다.

 직업 합창단이 아닌 순수 시민합창단이라는 점, 9월 중순 공연 의뢰가 들어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점, 불러야 할 곡이 새로 편곡된 곡만도 4개, 영어(대니보이)·스페인어(엘 나씨미엔또)·이탈리아어(벨라 차오)로 된 외국 노래가 3곡이나 되는 등 곡 선정이 까다로웠다는 것은 이들에게 고려 대상이 못된다. 아니, 어쩌면 이런 아쉬움들은 유가족들에게 더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애정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이번 두 번째 정기공연을 마친 합창단원들의 마음은 벌써 내년도 공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합창단은 이미 내년 6월 겨레의 노래를 주제로 한 정기공연과 10월 평화의 노래를 주제로 한 또다른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또 노래를 선곡하고, 콘티를 짜고, 안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쩌면 회사를 빠지고 연습에 몰두해야 할지도 모를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의 마음은 짐짓 들뜬 것처럼 보인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단단히 감염된 모습들이다.

 합창단원들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모습을 볼 때, 어쩌면 내년에는 더욱 바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테너 이준용씨는 “(최근 정부의 모습을 보면)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게 사실 썩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는 ‘묘한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덧붙인다. “그래도 노래의 힘을 믿어야겠지요.”

 ‘음악의 힘’을 믿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된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내년에도 공연장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현장에서, 아프고 눌린 사람들을 위해 ‘노래의 힘’을 보여줄 모습이 벌써 기대된다. 이번 정기공연 때보다 더욱 성숙해진 목소리로….

김보근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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