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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판소리 ‘로미오와 줄리엣’ 얼쑤~

등록 2009-01-27 18:22수정 2009-01-28 16:13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경상도 함양 귀족의 아들 로묘와 전라도 남원 귀족의 딸 주리로 분한 이광복-민은경 짝(왼쪽에서 세 번째까지), 임현빈-박애리 짝(오른쪽에서 두 번째까지)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경상도 함양 귀족의 아들 로묘와 전라도 남원 귀족의 딸 주리로 분한 이광복-민은경 짝(왼쪽에서 세 번째까지), 임현빈-박애리 짝(오른쪽에서 두 번째까지)
국립창극단 ‘로미오와…’ 전통창극 각색
로미오와줄리엣을 창극으로...
로미오 역 2명과 줄리엣 역 2명이 사랑과 죽음을 ...김경호기자.  죽음 장면은 박애리와 임현빈,사랑 장면은 민은경과 이광복
로미오와줄리엣을 창극으로... 로미오 역 2명과 줄리엣 역 2명이 사랑과 죽음을 ...김경호기자. 죽음 장면은 박애리와 임현빈,사랑 장면은 민은경과 이광복
문태규 가문 ‘로묘’역 임현빈씨
“창극의 세계화 첫 시도라 생각”

최불립 가문 ‘주리’역 박애리씨
“우리 소리로 명작 훌륭히 표현”

“촛불이 꺼진 후에야 바람이 분 줄 알고, 꽃잎 시든 후에야 서리가 내린 줄 아네. 어둠이 천지를 뒤덮기 전엔 달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움켜쥔 주먹을 풀고 난 후에야 한 줌도 안 된 인생을 땅 꺼지게 후회하지.”

사랑하는 로묘의 주검을 발견한 주리. 피를 토하듯 내어뱉는 그의 절규가 가슴에 꽂힌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통 창극의 어법에 담겨 2월7~1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다. 중세 이탈리아 베로나를 무대로 원수지간인 몬테규-캐플릿가 출신의 남녀가 벌이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우리 전통 무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전라도 남원 귀족 최불립의 딸 주리와 경상도 함양 귀족 문태규의 아들 로묘의 슬픈 10대 연애담이다.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영대)이 동시대 감각의 새 창극 레퍼토리를 개발하기 위해 기획한 ‘젊은 창극’의 첫 신작 무대다.

“서양 고전이 창극으로 거듭났을 때 어떤 느낌일까? 창극과 어울릴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사랑 이야기는 세상에서 늘 공존하는데 우리 소리, 우리 장단으로 표현한들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여주인공 주리 역을 맡은 창극단 간판스타 박애리(31)씨는 “연습하면서 창극 뼈대인 판소리만큼 호소력 있게 감성을 잘 표현하는 음악 어법이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로묘 역을 맡은 1년차 신입 단원 임현빈(32)씨는 “창극이 세계화로 가는 첫 시도라고 생각한다”며 거들었다. “<춘향전> <심청전> 같은 전통 소리 다섯바탕도 좋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외국 사람들이 보면 ‘저건 우리도 아는 건데 한국에도 있었구나’ 하고 놀랄 겁니다. 그런 게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판소리를 “입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10대의 내면과 정서에 맞게 노래하고 연기해야 하는데 30대여서 10대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주리 역을 꿰찬 젊은 소리꾼 민은경(26)씨가 “제가 10대 때부터 오빠를 봐왔는데 그 뒤에도 똑같다”고 놀려댄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박성환씨
극본과 연출을 맡은 박성환씨
민씨는 임현빈, 박애리씨와 같이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인 춘전 성우향 명창의 제자다. 앳된 외모에 걸맞지 않게 우렁찬 소리로 많은 팬을 확보한 차세대 스타.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심청이>에서도 심청 역으로 젊은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심청과 주리가 똑같은 열다섯 살인데, 심청은 애늙은이 같고, 주리는 앳된 애기 같다”며 “순간순간 감정에 솔직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 처리가 아직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로묘 역으로 민씨와 짝을 이룰 신세대 소리꾼 이광복(25)씨는 또 다른 고민을 이야기한다. “처음 겁을 먹었어요. 전통 소리 다섯 바탕은 많이 봐서 그림이 그려지잖아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양 작품이니 바꿔 하기 어색한 거죠. 만남-사랑-이별의 맥락 속에서 순간순간 바뀌는 부분들을 소화해내려니 힘들어요.”

이번 공연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펼쳐진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장소도 가면무도회가 아닌 백중날 놀이판. 원작 속에서 연인의 사랑을 잇는 사제관은 구룡폭포 근처 무당집으로 바뀐다.

<청>의 창극본을 맡았던 박성환(40·국립창극단원)씨는 원작 분위기를 살리며 전통 판소리 어법과 영호남 사투리 특유의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대본 작업에 고심을 거듭했다.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병창 보유자인 명창 안숙선(60·국립창극단 원로단원)이 소리 작곡(작창)을 해서 때로는 신명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음악극을 풀어냈다. 무녀의 제의식과 북청사자 춤, 버나돌리기와 줄타기, 꼭두각시놀음, 두 연인의 억울한 넋을 푸는 씻김굿 등의 다양한 전통연희를 곁들이면서 한국적 색채를 입혔다. 박씨는 “셰익스피어 원작이 갖고 있는 의미들과 여러 이미지들을 어떻게 살리고, 한국화시킬 것인가가 고민이었다”고 했다.

이번 무대는 ‘판소리 음악극’을 추구하는 창극이 유례 없는 서양 고전 작품 번안을 통해 세계화를 지향한 첫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창극단의 도전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에 공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02)2280-4115.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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