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제(19)
새달 19일 공연 앞둔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세계적 콩쿠르 최연소 우승
DG서 데뷔 음반…화려한 이력
“여운 짙은 연주 기대하세요”
세계적 콩쿠르 최연소 우승
DG서 데뷔 음반…화려한 이력
“여운 짙은 연주 기대하세요”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의 오른쪽 구석에 엉거주춤 자리잡은 ‘변두리
악기’ 콘트라바스. 첼로를 닮았지만 사람 키보다 큰 높이(1.6~1.9m)와 엄청난 무게(20㎏) 때문에 ‘악기가 아니라 가구’라는 농담을 듣는 초대형 현악기.
‘코끼리 소리 같은’ 특유의 저음 탓에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독주 악기에 견주어 ‘들러리 악기’로 하대받고 있는 콘트라바스(콘트라베이스, 더블베이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성민제(19)라는 한국 출신의 10대 천재 연주자가 있다. 그는 2006년 독일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콩쿠르 최연소 우승에 이어 2007년 러시아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가 인정한 더블베이시스트로 떠올랐다. 지난주에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데뷔음반 <플라이트 오브 더 더블 비>(유니버설뮤직코리아)까지 내며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더블베이스를 대중들에게 친숙한 악기로 만들고 싶어요. 태생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오케스트라 악기이지만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못지 않게 뛰어난 현악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오는 6월19일 데뷔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 ‘더블베이스의 여행’와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에 참가하려고 독일에서 귀국한 그를 지난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더블베이스는 굉장히 가능성이 큰 악기인데도 모두 ‘들러리 악기’로 착각하고 있다”면서 “그게 억울해서 음반을 내고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더블베이스가 나아갈 길을 찾는 개척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번 데뷔 음반은 ‘더블베이스의 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더블베이스의 한계에 도전한 연주곡들이 실렸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이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스튜어트 샹키의 <비제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환상곡> 등은 바이올린으로도 연주하기 힘든 초절기교의 난곡들이다. 지난해 11월 가차리안이 이끄는 독일의 유명 실내악단인 뷰템베르크 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동시에 녹음까지 해서 독일 음악팬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음반을 준비하면서 “곡을 선정할 때 나 자신이 해야 되는 음악과 대중들도 좋아하는 음악 사이를 찾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으면서 “더블베이스를 하는 형들이 정말 엑기스만 모은 음반이라고 칭찬을 해주셔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밝게 웃었다.
노란색 로고 때문에 클래식 음악계에서 ‘노란 딱지’로 통하는 ‘도이치 그라모폰’은 연주자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동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마르타 아르헤리치, 안네 조피 무터 등 세계 일류의 음악인들만 고집해왔다. 한국인 연주자는 김영욱·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지휘), 조수미(성악), 용재 오닐(비올라)에 이어 그가 여섯 번째. 특히 더블베이시스트로 선택된 것은 도이치 그라모폰 사상 그가 처음이다.
“제 근본적인 목표는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를 대중들이 많이 사랑하게끔 만드는 일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그게 아니어서 억울할 뿐이죠. 또 세계 3대 오케스트라에 더블베이스 수석을 하는 것과 솔리스트로서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는 것도 꿈이죠.”
그는 그것이 “첫 스승이었던 아빠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10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주자인 아버지 성영석(48)씨에게 처음 더블베이스를 배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여동생 성미경(16)도 더블베이시스트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더블베이스로 대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의 음반에 참여했던 어머니 최인자(46)씨는 피아니스트이고, 그의 큰아버지인 오보이스트 성필관씨와 큰 어머니인 플루티스트 용미중씨도 서울시향 단원으로 활약하는 등 전형적인 음악가 집안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의 권유로 활을 잡았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 아빠의 음악을 들었어요. 아빠의 길을 가고 싶었어요. 그 때 아빠가 하신 말씀이 ‘더블베이시스트로서 내가 못 이룬 꿈을 너가 이뤄보라’고 하셨어요.”
어린 소년에게는 악기가 너무 커서 1.5m미터 정도의 ‘미니’ 더블베이스를 주문 제작했지만, 백과사전 2권과 방석까지 깔고 올라서서야 연주할 수 있었다. 또 그의 주위에 아무도 더블베이스를 공부하는 학생이 없었고 중학교에서도 전교에 통틀어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는 길이 나오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그때를 털어놓았다. 그는 13살 때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뒤 ‘더블 베이스 신동’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16살에 선화예중 졸업 후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입학해 이호교(42) 교수에게 사사했다. 올해 초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오는 9월 세계적인 더블베이시스트 로만 파트콜로 교수가 있는 독일 뮌헨음악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는 첼리스트 요요마처럼 퀄리티 있는 연주자, 색깔있는 연주자를 닮고 싶다고 했다. 2006년 요요마가 내한했을 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첼리스트에 비해서 더 깊이가 있다고 느꼈어요. 다양한 음악을 추구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래서 두번째 음반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더블베이스로 편곡한 곡을 내고 싶습니다. ”
그는 오는 8월에는 이미 우승한 마티아스스페르거 콩쿠르, 쿠세비츠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뮌헨콩쿠르에 출전해 ‘더블베이스의 그랜드슬램’을 노리고 있다. 우승보다는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시험해보는 기회로 삼고 싶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요. 제 연주를 듣고 집에 가는 길에도 여운이 남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음악이 미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색깔이 중요하죠. 나만의 색깔을 찾는 작업을 해야죠. 또한 작곡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연주곡이 부족한 더블베이스 레퍼토리 개발에도 노력해야 되겠죠.”
다음달 19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젊은 거장이 1833년산 안토니오 마르토니 더블베이스로 만들어내는 ‘무한 속도’와 ‘무한 감동’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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