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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날로 먹지 않는 청춘…‘덤벼야 음악이다’

등록 2009-11-25 13:56수정 2009-11-25 15:26

잠바·박주원 두 남자의 도전




잠바
천연기념물 남성 재즈보컬…창작곡 음반으로 ‘낯선 시도’

박주원
지치지 않고 기타로 외길
집시음악으로 ‘기타 샛별’

만남

1. 아이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재능 있다는 얘기도 제법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음악 시간, 반장이 기타를 치며 이상은의 ‘담다디’를 불렀다. 반장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샘이 났다. 어머니에게 피아노 대신 기타를 배우겠다고 떼를 썼다. 결국 허락을 받고 동네 레코드가게 뒷방 기타 교습소에 등록했다. 단, 통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를 배우는 조건이었다. 박주원은 그렇게 기타와 첫 인연을 맺었다.

2. 소년에겐 기타를 잘 치는 형이 있었다. 멋져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형한테 기타를 배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죽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났다. 둘은 기타를 둘러메고 여학교 축제를 찾아다녔다. 통기타 듀오로 무대에 올라 박학기, 신승훈, 이승환 등의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면 다들 소리를 질러댔다. 이 맛에 음악을 하는구나 했다. ‘잠바’ 오진배는 그렇게 노래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잠바’는 식구들이 소년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좌절

1. 중학생이 된 박주원은 농구 하다 다친 손가락을 핑계로 더는 기타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힘들게 배워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생이 됐다. 수학여행을 갔는데 이번엔 부반장이 무대에 올라 본 조비의 노래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멋졌다. 밤에 부반장이 숙소로 찾아와 “기타 좀 친다며? 우리 밴드 하자”고 꼬드겼다. 전자 기타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이었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2001년 록 밴드 ‘시리우스’를 결성해 앨범까지 냈다. 하지만 앨범은 뜨지 못했다. 제대 뒤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성모, 성시경, 이소라, 이승환, 윤상, 조규찬 등과도 작업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았다.

2. ‘잠바’는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대학도 신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신학보다는 음악이 내 길인 듯싶었다. 제대 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등록했다. 기획사와 계약하고 록 발라드 가수 준비도 했다. 하지만 생활고는 그의 꿈을 짓눌렀다. 기획사를 나와 라이브 클럽을 전전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악기와 음반을 몽땅 불살라버리고 다신 음악을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우울증에 걸려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바텐더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딴 그는 어느 날 와인을 공부하겠다며 오스트레일리아로 훌쩍 떠났다.

결실

1. 박주원은 온전한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여성 재즈보컬 말로의 앨범에 참여했을 당시 기획사 대표가 그를 눈여겨봤다. 전부터 좋아하던 집시·스패니시 기타 연주를 하기로 했다. 국내에선 생소하고 까다로운 스타일이지만 꼭 해 보고 싶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박은 첫 앨범 <집시의 시간>을 발표했다. 흥겹고 정열적인 멜로디에 이국적 풍취와 우리만의 정서를 적절히 녹여냈다는 극찬이 줄을 잇는다. 연주 앨범으론 드물게 ‘이비에스(EBS) 스페이스 공감’ 신인발굴 프로젝트 ‘헬로 루키’ 연말결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2.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돌아온 ‘잠바’는 잘나가는 와인 소믈리에가 됐다. 남부럽지 않게 돈도 벌었다. 어느 날 재즈아카데미 시절 동료를 만나 재미 삼아 재즈 곡을 부르는데, 머릿속에 섬광이 번뜩 스쳤다. 어느덧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녹음실을 운영하며 재즈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했다. 버는 돈은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비할 수 없이 행복했다. 그는 최근 첫 앨범 <더 스토리 오브 제이>를 냈다. 국내에서 특히 드문 남성 재즈보컬로서 정규앨범을 낸 건 처음이다. 대부분을 창작곡으로 채운 것도 드문 경우다.

희망

1. 박주원은 말한다. “다음엔 가요 리메이크나 하드록 앨범도 내고 싶지만, 알 수 없죠. 그때가 되면 전혀 다른 음악이 하고 싶어질지도요. 그래도 확실한 게 하나 있어요. 저는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보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사실이죠.”

2. ‘잠바’는 말한다. “앨범에서 제 얘기를 원없이 했어요. 지금은 설레던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 짐을 푸는 기분입니다. 그리 유쾌하진 않아도 아직 지치지 않았고, 그래서 또다른 여행을 준비하려 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또 쌓여가고 있거든요.”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이정아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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