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대 모체문화 시기(100~700)의 것으로 위엄 서린 전사상을 정교한 세공으로 붙여놓았다. 남녀 성행위 장면을 형상화한 모체 시기의 이형 토기, ‘태양의 아들-잉카’ 전의 중요 유물인 시판 왕 무덤에서 나온 금제 귀고리 세부(가운데), 중세 치리바야 문화 시기(900~1440)의 앉은 미라상(오른쪽). 미라상은 쪼그린 미라에 직물 모자를 씌우고 아마포를 입힌 모양새가 독특하다.
지구 반바퀴 날아온 ‘태양의 아들-잉카’전
고대 안데스 장인들은 변신의 귀재들이었다. 사람과 짐승, 하늘땅이 온통 하나인 세상에 살았던 그들의 손길 아래서 빚고 쪄낸 토기와 직물, 금은 세공품은 끝없이 서로 몸을 섞는 변신과 융합, 혼돈의 이미지를 발산한다. 사람이 뱀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퓨마와 고양이, 여우는 사람의 몸을 갖춘 신으로 변했다. 팔과 머리가 어느새 토기가 되고, 사람의 입에서는 뱀이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무늬가 직물을 장식한다.
시판왕 무덤 속의 황금유물
성행위 모습 새긴 항아리 등
마술적 리얼리즘의 ‘뿌리’ 잉카 문명의 터전이던 남미 서북부 페루에서 출토된 잉카 주요 유물들을 한자리에 추린 특별전 ‘태양의 아들-잉카’전(내년 3월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대변되는 남미 문화예술 전통의 뿌리를 엿보는 자리다. 남미 안데스 산맥 기슭 고대 문명의 금속, 토기 유물들은 이미지의 경계에서 매우 자유롭다. 태초의 혼돈 속에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하여 삶과 죽음, 자연과 세간의 구분도 사라지는 특유의 마술적 판타지로 넘실거리는 전시장. 페루의 10여개 박물관·연구소에서 빌려온 고대 안데스 유물 351점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시는 기원전 3000년께부터 16세기 스페인 침략에 따른 잉카 멸망 시기까지의 유물들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정작 남미 문명의 대명사인 14~16세기 잉카 문명의 황금 유물들은 별로 없다. 스페인 침략군의 약탈로 빈약한 잉카의 공백을 5000여년 전부터 명멸해온 여러 고대 안데스 문명의 다채로운 유물들이 메운다. 관람의 고갱이는 ‘20세기 세계 3대 고고학적 발견’으로 꼽힌다는 ‘시판 왕’ 무덤에서 나온 황금 유물 41점이다. 모체 문화(100~700)의 핵심 유적인 시판 왕 피라미드 무덤과 제단 등에서 출토된 황금 귀걸이와 코걸이, 목 장식 등은 금과 블루톤의 터키석으로 치장됐고, 정교한 전사상이 새겨져 위엄이 가득하다. 특유의 고양잇과 동물신인 펠리노의 금동제 신상은 기괴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펠리노 신상은 하늘, 땅, 인간을 일체화시켜 보았던 안데스 고대 문명에서 가장 유행했던 아이콘으로 전시장 곳곳의 토기, 장신구 문양으로 출몰하면서 인간, 뱀 등과 결합된 모습으로 나와 안데스인들의 초자연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고대 안데스 문명의 생명력을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유물은 기원전 100~700년 사이 모체 문화 시기에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형상의 이형 토기들이다. 격렬한 성행위 장면과 남녀의 성기 세부를 새긴 항아리들의 생생한 표현력이 눈을 떨리게 한다. 소용돌이처럼 뱀이 휘감은 펠리노 신 토기, 성기를 늘어뜨린 채 씨름하는 남자들의 상, 입을 벌린 인물 두상 등이 신라 토우와는 또다른 원시적 생동감을 풍긴다. 파라카스(기원전 1000~기원후 200) 문화의 채색 직물은 입에서 뱀을 토하고 새 등을 손에 휘감은 신의 연속 무늬를 넣어 자연융화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기원전 8000년께 이집트보다 훨씬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고대 미라는 태아의 모습대로 쪼그린 자세를 취한 독특한 모양새가 볼거리다. 저 유명한 공중도시 ‘마추픽추’에서 출토된 금속 동물상과 아리발로 항아리 등의 잉카 유물 23점도 함께 나왔다. 박물관 쪽은 나스카 평원의 유명한 거대 그림 영상 등을 상영하며, 시판 왕 무덤 속 인물의 실물 복원상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1588-786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성행위 모습 새긴 항아리 등
마술적 리얼리즘의 ‘뿌리’ 잉카 문명의 터전이던 남미 서북부 페루에서 출토된 잉카 주요 유물들을 한자리에 추린 특별전 ‘태양의 아들-잉카’전(내년 3월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대변되는 남미 문화예술 전통의 뿌리를 엿보는 자리다. 남미 안데스 산맥 기슭 고대 문명의 금속, 토기 유물들은 이미지의 경계에서 매우 자유롭다. 태초의 혼돈 속에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하여 삶과 죽음, 자연과 세간의 구분도 사라지는 특유의 마술적 판타지로 넘실거리는 전시장. 페루의 10여개 박물관·연구소에서 빌려온 고대 안데스 유물 351점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시는 기원전 3000년께부터 16세기 스페인 침략에 따른 잉카 멸망 시기까지의 유물들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정작 남미 문명의 대명사인 14~16세기 잉카 문명의 황금 유물들은 별로 없다. 스페인 침략군의 약탈로 빈약한 잉카의 공백을 5000여년 전부터 명멸해온 여러 고대 안데스 문명의 다채로운 유물들이 메운다. 관람의 고갱이는 ‘20세기 세계 3대 고고학적 발견’으로 꼽힌다는 ‘시판 왕’ 무덤에서 나온 황금 유물 41점이다. 모체 문화(100~700)의 핵심 유적인 시판 왕 피라미드 무덤과 제단 등에서 출토된 황금 귀걸이와 코걸이, 목 장식 등은 금과 블루톤의 터키석으로 치장됐고, 정교한 전사상이 새겨져 위엄이 가득하다. 특유의 고양잇과 동물신인 펠리노의 금동제 신상은 기괴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펠리노 신상은 하늘, 땅, 인간을 일체화시켜 보았던 안데스 고대 문명에서 가장 유행했던 아이콘으로 전시장 곳곳의 토기, 장신구 문양으로 출몰하면서 인간, 뱀 등과 결합된 모습으로 나와 안데스인들의 초자연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고대 안데스 문명의 생명력을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유물은 기원전 100~700년 사이 모체 문화 시기에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형상의 이형 토기들이다. 격렬한 성행위 장면과 남녀의 성기 세부를 새긴 항아리들의 생생한 표현력이 눈을 떨리게 한다. 소용돌이처럼 뱀이 휘감은 펠리노 신 토기, 성기를 늘어뜨린 채 씨름하는 남자들의 상, 입을 벌린 인물 두상 등이 신라 토우와는 또다른 원시적 생동감을 풍긴다. 파라카스(기원전 1000~기원후 200) 문화의 채색 직물은 입에서 뱀을 토하고 새 등을 손에 휘감은 신의 연속 무늬를 넣어 자연융화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기원전 8000년께 이집트보다 훨씬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는 고대 미라는 태아의 모습대로 쪼그린 자세를 취한 독특한 모양새가 볼거리다. 저 유명한 공중도시 ‘마추픽추’에서 출토된 금속 동물상과 아리발로 항아리 등의 잉카 유물 23점도 함께 나왔다. 박물관 쪽은 나스카 평원의 유명한 거대 그림 영상 등을 상영하며, 시판 왕 무덤 속 인물의 실물 복원상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1588-786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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