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이병우
[리뷰] 2010 이병우 콘서트
빨강과 파랑이 교차하는 줄무늬 셔츠에 빵모자를 쓴 그의 얼굴 위로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어깨에는 낡은 전자기타를 메고 있었다. 1부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자신이 만든 영화 음악과 비발디의 기타 콘체르토를 연주하던 근엄한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0 이병우 기타 콘서트’ 2부의 막은 그렇게 올랐다.
‘출발’의 전주가 울렸다. 조동익과 이병우가 결성한 전설적 듀오 ‘어떤날’의 2집(1989) 첫 곡이다. 객석에서 박수와 탄성이 터졌다. 가수 유희열이 무대 위로 나왔다. 환호성이 더 커졌다. 유희열은 힘을 뺀 목소리로 조곤조곤 노래를 읊었다. 20여년 전 어떤날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를 마친 유희열은 “제 평생 가장 떨리는 무대였다”며 “저에게 있어 어떤날은 비틀스·베토벤·모차르트보다도 이 세상 최고의 예술가이자 교과서였기에 노래하면서도 이 자리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우는 “제가 들고 나온 기타, 입고 있는 셔츠는 모두 20여년 전 것”이라며 “오래된 사진 같은 어떤날 음악을 다시 연주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자리에 조동익 형이 없어 마음이 허전하다”며 “언젠가는 형이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형이 만든 곡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기타에 맞춰 유희열이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불렀다. ‘그런 날에는’은 이병우의 기타 연주곡으로 재탄생했다. 기타 선율이 흐르는 무대 뒤로 조동익과 이병우의 풋풋한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비춰졌다. 사진 속 이병우는 이날 무대에 입고 나온 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떤날 1집(1986) 첫 곡 ‘하늘’의 전주가 흘렀다. 이번에는 가수 이적이 나왔다. 원곡과 달리 힘있는 목청으로 시원시원하게 터뜨리며 노래했다. 노래를 마친 이적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자리”라며 “사실 유희열씨는 어떤날 디엔에이를 가지고 있는 분이지만 저는 스타일이 다른데 왜 불러줬는지 의아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이병우는 “그렇지 않다”며 “원래 이적씨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불러줬다”고 말했다. 이적은 ‘초생달’을 자신의 색깔을 담아 인상적으로 소화해내며 이병우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이병우는 “이번에는 어떤날 음악을 다섯 곡만 선보였다”며 “기회가 되면 어떤날 곡으로만 전체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엔 꼭 조동익씨와 같은 무대에서 여러분을 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기타리스트의 삶’, ‘자전거’, ‘야간비행’ 등 솔로 앨범 수록곡을 연주하고 공연을 마무리한 그는 앙코르 곡으로 깜짝 선물을 들고 나왔다. <한겨레>와의 인터뷰(10월13일치 27면)에서 어떤날 곡 중 가장 애착이 간다고 꼽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직접 부른 것이다. 예의 투명한 미성과 같을 순 없었지만, 노래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 20여년 전의 어떤 날로 돌아간 듯했다. 시간의 벽을 녹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플레이가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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